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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 I (6) 학기도 곧 끝이 난다. 아내의 도자기 클래스는 그동안 두 번 휴일도 있고, 교수가 일이 있어 한 주 일찍 끝나는데, 수채화 반은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 그동안 이것저것 많이 배웠다. 요즘 과제물을 학기 초 작품과 비교해 보면 한눈에 차이가 드러난다. 학기 초, ‘테리’라는 이름의 백인 영감이 다가와 수채화 이야기를 하고 싶으니 전화번호를 주겠느냐고 물었다. 자기는 오래전 CSUN에서 수채화를 공부했는데, 그동안 손을 놓아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보아하니 외로워서 그런 것 같았다. 이런 노인과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도 없다. 난 수채화는 처음이며 아는 것이 없다고 얼버무리며 자리를 피했다. 그 후로는 그와는 마주치면 인사만 하는 정도로 지냈다. 학점과 상관없는 청강생인 그는 학기 초에는 과.. 2023. 12. 1.
가을 편지 내 나이 6-7살 때의 일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무렵 나는 소아마비를 치료하러 을지로에 있는 메이컬 센터에 다니고 있었다. 그날은 외할아버지와 병원에 갔었다. 물리치료를 마치고 약을 받아가야 했다. 할아버지는 맹장수술한 자리에 탈장이 생겨 무거운 것을 오래 들지 못하셨다. 나를 벤치에 내려놓고 모퉁이를 돌아 약국으로 약을 타러 가셨다. 곧 온다던 할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혹시 나를 버리고 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훌쩍이다 잠시 후, 엉엉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모두들 나를 슬쩍 쳐다보고는 그냥 지나쳐 가버렸는데, 하얀 간호사복을 입은 누나가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내게 왜 울고 있느냐고 물었다. 훌쩍이며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나를 덥석 팔에 안고 약국으로 갔다. 마침 약을 찾아오.. 2023. 11. 25.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 갑자기 회사의 여직원과 결혼을 발표한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회사도 그만둔 ‘다카코’에게 ‘진보초’에서 고서점을 하고 있는 외삼촌으로부터 책방 일을 도와달라는 전화가 온다. 작품의 배경이 된 진보초라는 동네는 고서점으로 유명한 지역이라고 한다. 집세 없이 서점의 2층 작은 방에 살며 가게 일을 도와 달라는 외삼촌의 제의를 받아들여 진보초에 머물게 된다. 그녀는 곧 일본 근대문학 (1868-1945년)에 빠져 들고, 근처 카페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친분을 맺게 된다. 일상의 즐거움을 찾은 그녀에게 어느 날 다른 여자와 결혼을 앞둔 옛 남자친구가 연락을 해 온다. 그녀의 감정의 변화를 알아차린 외삼촌에게 다카코는 남자와 헤어지게 된 배경을 털어놓는다. 외사촌의 제안에 두 사람은 택시를 타고 밤 11시에 그 남자.. 2023. 11. 18.
당신 없는 일주일 라디오 방송국의 프로듀서인 ‘저드 알트먼’은 아내인 ‘퀴인’이 그의 상사인 ‘웨이드’와 집에서 바람을 피우는 장면을 목격하고 집을 나온다. 며칠 후, 누나 ‘웬디’로부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집으로 간다. 어머니의 집에는 형 ‘폴,’ 한때 저드의 여자친구였던 형수 ‘애니,’ 누이 웬디와 일중독으로 아내를 소홀히 하는 매형 ‘배리,’ 장례식이 시작한 후 겨우 도착한 막내 ‘필립’과 그의 나이 많은 여자친구 ‘트레이시,’ 그리고 웬디의 어린 시절 남자친구였으며 사고로 뇌손상을 입은 ‘호리’와 그의 어머니 ‘린다’등이 모여 있다. 어머니 ‘힐러리’는 무신론자였던 아버지가 알트만 집안 아들들의 친구인 랍비 ‘찰스’의 인도로 유대교식 장례문화인 7일간의 시바(shiva)를 부탁했노라고 선언한다. 영화.. 2023. 1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