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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출산하던 날 딸아이가 아기를 낳았다. 아침에 병원에 간다는 소식을 들었고, 오후에는 사위와 함께 병실에서 찍은 웃는 모습의 사진까지 보내왔다. 그동안 여러 명의 손주들이 태어났지만, 병원에 간다고 소식을 주고, 사진까지 보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스마트폰에 아기 사진이 뜨면, 그제사 “아, 아기가 나왔구나” 했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자꾸 마음이 갔다. 저녁까지 아기가 나오지 않았다. 유도분만을 하게 된다며 아마도 밤에 아기를 낳을 것 같다고 했다. 자고 일어나면 손녀의 사진을 볼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일어나 전화기를 열어보았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인가 싶어 메시지를 보내니 한참만에 답이 왔다. 아기가 나오지 않아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 2020. 9. 1.
딸아이의 임신 아내의 생일이라 모처럼 아이들과 식당에 모였다. 함께 사는 조카아이들도 한국에 다녀오고 세미네도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후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조금 늦게 도착한 세미가 자리에 앉더니 전화기를 건넨다. 받아 드니 화면에는 초음파 검사 영상이 떠있다. 첫아이를 임신한 것이다. 8주가 되었다고 한다. 교육공무원인 사위의 방학을 맞아 스페인으로 휴가 여행을 떠나기 바로 전날 알았는데,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8-12주가 되기 전에는 유산의 확률이 있다며 병원에서 8주 이후에나 가족들에게 알리라고 했단다. 부모들이 알게 되면 혹시라도 여행을 가지 말라고 말릴까 싶어 말을 안 했을 것이다. 이틀 전 아침에 아내가 들려주었던 꿈이 생각났다. 아내는 꿈에서 호랑이와 커다란 잉어를 보았다며 눈.. 2020. 8. 31.
무엇이 친일인가 요즘 한국 정치판의 기준으로 보면 나는 친일파 매국노의 자손이다. 외할아버지는 일제시대 때 경성전기에서 일을 했으며, 경성전기 야구팀의 일원이었다. 꿈 많은 식민지 청년이었던 아버지는 일본군으로 복무한 행적이 있지만, 생전에 그 일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셨다. 더러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왜 아니겠는가. 그 세대들에게는 식민지 시대가 청춘의 시절이었고 꽃다운 학창 시절이 아니었던가. 해방 후에는 대한민국의 해안경비대에 입대하여, 해군, 해병대의 창군 멤버로 조국에 봉사한 분이다. 6.25 때는 인천 상륙 작전에 참여하여 함경북도까지 북진하였고, 휴전 후에는 일선 연대장으로 근무하셨다. 그때 받은 훈장 덕에 은퇴 후에는 돌아가실 때까지 국가 유공자 연금을 받으셨다. 어디 우리 아버.. 2020. 8. 30.
이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샤워를 마치고 차를 타고 집을 나선다. 요즘은 이틀에 한번 샤워를 하고 면도도 한다. 잠옷 바지 하나로 5달째 잘 버티고 있다. 외출복으로 갈아입을 필요도 없다. 어차피 차에서 내릴 것도 아니다. 그동안 병원에 가느라고 2-3번, 차를 고치러 수리점에 가느라고 2-3번, 외출복을 입고 나갔던 것이 전부다. 천천히 골목길을 나가다 보면 늘 만나는 이웃들의 모습이 보인다. 개를 데리고 아침 산책을 나온 이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비닐봉지가 들려있다. 노인들은 천천히 걷고, 젊은이들은 이어폰을 귀에 끼고 땀을 흘리며 뛴다. 교육구 급식소에 들러 음식 봉투를 받고, 스타벅스로 향한다. 내가 좋아하는 아침 시간이다. 차에 타면 다운로드하여 놓은 팟캐스트 방송 ‘윤고은의 북 카페’를 튼다. 초대손님들과 책 이야기를 나.. 2020. 8. 29.
초심, 열심, 그리고 뒷심 거울 볼 일이 별로 없다. 출근길 머리는 아내가 손질해 주고 면도는 손으로 만져 까칠한 곳을 골라 전기면도기를 들이민다. 어쩌다 한 번 거울을 보곤 마주 보는 낯선 영감의 모습에 깜짝 놀라곤 한다. 마음은 아직도 서툰 기타 솜씨로 어니언스의 ‘편지’를 노래하던 21살이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들 그럼 마음으로 사는 모양이다. 얼마 전 가족들이 밥을 먹는 자리에서 40 초반의 큰 아들이 하는 말이 “마음은 21살”이라고 한다. 도종환 시인은 그의 에세이 ‘첫 마음’에서 ‘초심, 열심, 종심(뒷심)’ 을 이야기한다. 매사에 가장 중요한 것은 ‘초심’이다. 그래서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하지 않았나.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나머지는 도로아미타불이다. 시작만 해 놓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그건 ‘작.. 2020. 8. 28.
상실의 시대 20여 년 만에 ‘상실의 시대’를 다시 집어 들었다. 원제는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하루키의 대표작이다. 작품 속에 나오는 존 레논이 만든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노래에서 따온 제목이다. 책 표지에 실린 그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에게도 이런 청춘의 날이 있었구나. 청년 하루키의 모습은 책의 주인공을 연상시켰다. 1968년을 시작으로 열여덟의 청년 ‘와타나베’가 3년 동안 경험하는 사랑과 방황의 이야기다. 400쪽이 넘은 분량의 장편소설이다. 프레지던트 데이 (2/17일) 연휴의 토요일에 시작해서 이틀 만에 끝냈다. 이렇게 몰입해서 책을 읽은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다. 주인공 와타나베를 통해서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던 청춘의 시간들을 잠시나마 추억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는 집을 떠나 기.. 2020.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