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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지나가는 소나기일 뿐이다 성당에서 영세를 받은 직후의 일이다. 나이 드신 자매님 한 분이 내게 오시더니 기도를 부탁하셨다. 아직 어린 자녀가 있는 딸이 유방암인데 상태가 심각하다고 했다. 새로 영세받은 사람에게는 기도의 힘이 있다며 딸의 쾌유를 비는 기도를 부탁하셨다. 그 무렵 나는 한 두 차례 영적인 체험도 한터이라 정말 그런가 하는 마음으로 딸을 위한 기도를 몇 차례 드렸다. 정작 내 기도가 효험이 있었는지는 확인해 보지 못했다. 만약 상태가 나빠졌으면 그분이 더 상심할 것 같아서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난봄 그분이 돌아가셨으니 이제 확인할 길은 없어졌다. 외할머니는 식구가 아프거나 집안에 걱정거리가 생기면 달달한 백설기를 쪄서 냉수와 함께 소반에 올려 장독대로 갔다. 가끔은 북어가 오르기도 했다. 그 앞에서 고개를 .. 2020. 9. 12.
내장탕 난 소나 돼지의 내장을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에서는 내장을 많이 먹었다. 소의 간은 저며서 달걀을 씌워 전을 만들어 먹었다. 따뜻할 때 초간장을 찍어 먹어도 맛있지만, 식은 것을 그대로 먹어도 맛있다. 미국에 오니 ‘liver and onion’이라는 요리가 있었다. 얇게 저민 소 간에 밀가루를 묻혀 베이컨 기름에 양파와 함께 지진 요리다. 80-90년대만 해도 웬만한 식당의 메뉴에 들어 있었는데 요즘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소 간은 가격이 저렴해 전에는 자주 해 먹었는데, 언제부턴지 간을 먹고 나면 다음날 소변 색이 달라졌다. 아무래도 성장 호르몬과 항생제 때문이 아닌가 싶어 먹지 않게 되었다. 외가에서는 겨울이면 곱창과 양, 사태를 넣고 끓인 곰국을 만들어 먹었다. 송송 썬 파를 듬뿍 넣고 소금.. 2020. 9. 11.
돈 안드는 고객관리 모처럼의 휴일, 동생네와 함께 작은 아버지를 모시고 한국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밑반찬과 냉면이 먼저 나왔는데, 종업원이 식초병을 아내 쪽으로 떨어트리는 바람에 옷 위로 식초가 쏟아졌다. 종업원은 변변한 사과의 말도 없이 종이 냅킨 몇 장을 건네주었다.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냅킨으로 옷에 뭍은 식초를 닦자 그제사 물수건이라도 가져다주겠노라고 하며 갔다. 잠시 후 주문했던 남어지 음식들이 모두 나왔지만 물수건은 나오지 않았다. 만약 미국 식당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더라면 즉시 매니저가 달려와 사과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냉면 값을 받지 않던지 아니면 세탁비에 준하는 금액을 음식값에서 빼주었을 것이다. 그날 오후 아내는 며칠 전 샀던 식빵을 들고 '파네라 브레드(Panera Bread)'에 갔다. 아침에 .. 2020. 9. 10.
마피아도 늙으면 초라해진다 가을이 다가온 듯싶던 9월에 엄청난 폭염이 찾아왔다. 어제 Woodland Hills는 121도 (섭씨 49.4도)까지 올라갔고, 우리 동네는 118도 (47.8 도)였다. 남가주 (Southern California) 모든 지역이 기록을 갈아치웠다. 게다가 곳곳에 산불이 났다. 한국같이 습도가 높은 지역이라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나는 영화 ‘다니 브래스코’ (Donnie Brasco)를 보았다. 한국 사이트에는 ‘도니 브래스코’라고 나와있다. 영어에서는 알파벳 “O”를 “오” 가 아닌 “아” 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 “Mom” (엄마) 은 “맘”이라고 발음하고, “posture” (자세)는 “파스쳐” 하고 발음한다. 내 영어 이름 “Don” 은 “돈” 이 아니고, “단”이다. 범죄와의.. 2020. 9. 9.
추리 열매 어머니의 심부름을 가는 길이었다. 그날따라 날은 덥고 길은 멀어 보였다. 정숙이네 과수원을 지나자니 탐스러운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추리 나무 가지가 더위에 늘어져 팔을 올리면 손에 닿을 듯싶었다. 아이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얼른 하나 따서 입어 넣었다. 아삭하고 깨무니, 단물이 입가로 흐른다. 꿀을 발라 놓은 듯 달고, 꽃보다 진한 향기가 입안에 퍼진다. 다 먹기도 전에 두어 개를 더 딴다. “너 현숙이지? 이리 와 봐.” 들켰구나.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정숙이 고모가 부른다. “어디 심부름 가니? 덥겠다. 너 이 추리 좀 먹어 볼래?” 정숙이 고모가 나무에서 추리를 하나 따서 내민다. 아이는 아무 말없이 받아 든다. “우리 집에 나무에서 떨어진 것이 좀 있는데, 가.. 2020. 9. 8.
내가 만난 동성애자 이야기 내가 알고 지냈던 최초의 동성 커플은 우리 옆집에 살던 남자들이었다. 아직 동성애자들에게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시절이라 그랬던 모양이다. 나무판자로 높게 담을 세우고, 창문에는 늘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주말이면 일주일치 장을 본 듯 차에서 그로서리 백을 내리는 모습을 본 것이 고작이다. 노스릿지 지진이 났을 때, 혹시 가스관이 터졌을지 모르니 밸브를 잠가주겠다고 공구를 들고 나온 그와 처음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 년 후, 내가 이사를 준비하며 헌 가구와 쓰레기들을 내놓는 것을 보고 그가 다가왔다. 함께 살던 파트너가 죽었다고 한다. 그는 에이즈에 걸린 파트너의 곁을 지키며 살다가 그가 죽자 집을 상속받았다고 한다. 집을 팔고 곧 이사를 갈 것이라고 했다. 바로 옆집에 에이즈 환자가 살고 있었다는 사실.. 2020. 9.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