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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병원 이야기 (4)

by 동쪽구름 2022. 7. 1.

20여 년 전의 일이다. 정기검진을 하던 중, 주치의가 내 심장이 남들보다 빨리 뛴다고 했다. 계속 빨리 뛰면 결국 심장근육이 지쳐 멈추지 않겠느냐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며 심장 전문의를 보라고 했다. 심장 사진도 찍고, EKG 검사도 했지만 원인은 알아내지 못했다. 그때부터 심박동을 늦추는 약을 먹기 시작했다.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중추신경이 손상되어 심장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나는 전문가가 아니니 정확한 진단은 아니다.

 

지난 6월 초 정기검진을 받으러 갔더니, 주치의가 심장이 너무 빨리 뛴다며 깜짝 놀란다. 일분에 120 정도가 나왔다. 100이 넘으면 이상이 있는 것으로 본다. 생각해 보니 이틀 동안 약을 챙겨 먹지 않았다. EKG 검사를 하더니, 그래프가 전과 다르다며 정밀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오더를 내렸다. 의사는 카페인이 심장을 빨리 뛰게 한다며, 커피를 끊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집에 와서 약을 두 알 먹고 몇 시간 후 심장박동수를 재어보니 80대 중반이 나왔다. 아무래도 약을 먹지 않은 것이 원인 같다. 미국의 건강보험은 검사를 해보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이런 기회에 심장검사를 받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의 오더에 따라 병원에서 연락이 왔기에 예약을 했다. 

 

검사 하루 전에는 커피와 티, 청량음료와 초콜릿 등 카페인이 든 음식은 먹을 수 없고, 당일 아침은 굶고 가야 한다. 검사 당일, 먼저 약물을 주사하고 심장 사진을 찍은 후, 스트레스 테스트를 받았다. 건강한 사람 같으면 러닝머신에 올라 달리기를 해 심장에 스트레스를 주지만 나처럼 운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주사로 같은 효과를 낸다. 주사약이 들어가니 숨이 가빠지고 가슴이 답답해 왔다. 그 상태에서 EKG 검사를 한다. 

 

1차 검사 후에는 대기실에 나가 아내가 싸준 샌드위치와 과일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1시간 후에 다시 심장 사진을 찍는 것으로 검사는 끝이 났다. 

 

검사 준비를 하며 만난 간호사는 62세의 ‘애나’라는 여성 간호사였다. 15-20분 남짓한 시간에 아마도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그녀와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시작하니, 요즘 마음에 담아두었던 이야기가 순식간에 나와 버렸다. 그렇게 털어내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내 이야기가 끝난 후에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30여 년 전, 3, 4살 된 두 아이의 아버지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해왔다. 그녀는 아이를 낳을 수 없어 자신의 아이는 없다. 남편의 아이들은 그녀를 엄마처럼 따르고, 그녀의 부모를 할아버지 할머니로 대한다고 한다. 그 남편이 지금 아프다고 말하는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아마도 회복이 힘든 난치병인 모양이다. 

 

이탈리아 국적을 가진 그녀는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사촌들이 있는 이탈리아로 갈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가 이탈리아로 돌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해 주었다. 검사가 다 끝나고 나니 12시가 조금 넘었고, 애나는 점심을 먹으러 나가 자리에 없었다. 

 

가끔은 이렇게 두 번 다시 만날 일 없는 사람에게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할 수 없는 말을 하게 된다. 낯 모르는 신부님을 찾아가 고해성사를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런 말을 하면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혹시라도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 퍼트리지는 않을까 등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집에 돌아오는 길,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사들고 왔다. 이틀 만에 마시는 커피는 여느 때보다 더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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