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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대학에 입학했다

by 동쪽구름 2022. 2. 16.

40년 만에 다시 대학에 입학했다.

 

아내는 미국에 와서 그림을 공부했다. 지금은 조카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잠시 손을 놓고 있지만, 여러 해 동안 착실히 대학에서 수업을 들었다. 학교 전시회에도 여러 번 참여했다. 집에는 아내가 그린 그림이 여기저기 걸려 있고, 차고에는 한쪽 벽면에 그림 캔버스가 가득하다.

 

그런 아내를 보며 나도 그림을 배워보고 싶었다. 물감으로 그리는 그림(painting) 말고, 연필이나 펜으로 쓱쓱 그리는 그림(sketch/drawing)을 그리고 싶었다. 내가 쓰는 글에 어울리는 스케치를 하고 싶었다.

 

1년 전쯤의 일이다. 화가가 될 것도 아니고 스케치 정도는 혼자 독학으로 연습을 많이 하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아마존에서 참고서적과 스케치 도구를 구입했다. 매일 한 시간 정도 책을 보며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한 달 정도 지나니 제법 내가 보기에도 실력이 늘었다. 하지만 거기가 끝이었다. 그다음부터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쓴 책도 사고 유튜브도 찾아보았지만, 쓱쓱 몇 번에 근사한 스케치가 나오는 영상에 주눅만 들뿐… 결국 슬그머니 손을 놓아버렸다.

 

지난 12월, 85년에 졸업했던 LAVC(Los Angeles Valley College)에 재입학을 했다. 마침 목요일 저녁 온-라인 강의가 있어 그림 클래스(Drawing I)에 등록을 했고, 어제 첫 수업이 있었다.

 

교수는 나보다 나이가 조금 더 들어 보이는 백인 노교수. (어쩌면 내 나이 또래 일 수도 있다.) 학생은 나까지 12명이다. 물론 모두 20-30대로 보이는 젊은 학생들이다.

 

40년 전 회사 일을 마치고 가서 듣던 야간수업 때는 어서 빨리 이 힘든 시기를 견디어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성적을 위해 과제물을 내고,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답을 외우기에 바빴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듣는 수업은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업은 저녁 6시에 시작해서 10시까지다. 첫날임에도 불구하고 10시 10분이 돼서야 끝이 났다. 중간에 10분 휴식. 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 있어 허리가 좀 아팠지만, 수업은 재미있었다.

 

미국은퇴자협회 (AARP)가 발행하는 책자에는 은퇴해서 살기 좋은 도시로 큰 대학이 있는 중소도시를 추천한다. 대학에서 평소 관심이 있던 주제의 강의를 들을 수 있고, 스포츠와 문화 예술 공연이나 전시회 등의 다양한 소일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다음  목요일까지 제출할 과제물이 2가지 있다. 그림을 그려, 사진을 찍고, 12 마감시간 전에 포스팅을 해야 한다. 신학기의 흥분과 과제물에 대한 부담으로 마음이 분주하다.

 

LAVC는 집에서 과히 멀지 않은 거리에 있어 가끔 치과 가는 길에 보곤 한다. 캠퍼스는 그동안 많이 변했다. 40년 전 내가 수업을 듣던 건물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섰다. 가을 학기에는 캠퍼스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림 수업에 익숙해지고 나면, 가을학기에는 영문학이나 천문학 강의도 들어 볼 작정이다.

 

(책을 따라 공부한 지 1달쯤 지나 그린 것이다.

 

(책을 처음 시작할 때, 저자는 세 가지 그림을 그려 보라고 했다. 자신감 없이 주저하며 그린 것이라 연필선이 흐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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