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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우리 오렌지

by 동쪽구름 2021. 11. 6.

우리 집 뒷마당에는 몇 그루의 과일나무가 있다. 아내는 겨울이 되면 나무의 가지를 잘라 주고, 봄이 되면 거름을 사다 땅을 파고 뿌려 주며, 여름내 더위와 모기와 싸우며 마당에 물을 준다.

 

봄에 열렸던 복숭아는 채 익기도 전에 다람쥐에게 몽땅 털렸다. 이놈들이 매일 드나들더니 어느 날 보니 하나도 남지 않았다. 작년에는 한꺼번에 모두 익어 다 먹지 못하고 설탕 조림을 만들어 냉장고에 두고 먹었는데, 금년에는 몇 알 먹지도 못하고 끝이 났다. 몇 개 안 되는 석류도 그놈들에게 빼앗겨 겨우 한 알을 건졌다.

 

화분에서 자라던 구아바도 열매가 열렸다. 아내는 다람쥐 눈에 띠지 않게 잘 숨겨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아침에 나가보더니 몽땅 사라졌다고 한다. 이제 남은 것은 작은 나무에 달린 오렌지 4개. 아내는 이 네 알의 오렌지를 지키기 위해 대대적인 방어작전에 나섰다. 

 

마켓에 가면 탐스러운 오렌지를 하나에 $0.50 – 1.00에 살 수 있다. 봉지에 든 것은 더 싸게 살 수도 있다. 우리 집 나무에 달린 것보다 훨씬 크고 달콤한 오렌지를 커피 한 잔 값이면 3-4개 사 먹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몇 알의 오렌지를 지키려는 것은 바로 '나의 오렌지'이기 때문이다. 

 

“나의 꽃이 되어준 그 장미꽃은 한 송이지만, 수백 송이의 너희들보다 나에겐 더 중요해. 왜냐하면 그 꽃은 내가 직접 물을 주고, 유리 덮개를 씌우고, 바람막이를 세워주고, 그 꽃이 다치지 않게 벌레까지 죽였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투덜댄다거나 뽐낼 때, 심지어 토라져 아무 말도 안 한 때에도 나는 귀를 기울여주었어, 그건 바로 내 장미꽃이니까.” '어린 왕자'에 나오는 대목이다. 

 

아무리 미천한 것이라도 ‘나의’ 것은 소중하다. 미국 아이들은 10대 후반이 되면 자동차 운전을 배우고 대개는 부모가 쓰던 헌 차를 물려받는다. 고물차라도 ‘네 것’이라고 하는 순간, 아이는 그 차를 소중하게 아끼게 된다. 주말이면 세차를 하고, 적은 용돈을 쪼개어 왁스를 사서 차에 발라 광을 낸다. 차와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옆집 사람은 바다 건너 다른 대륙에 사는, 사진에서 보는 이방인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내가 그를 이름으로 부를 때, 그는 ‘나의’ 이웃이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의’ 이웃이 되면, 내가 이미 관계를 맺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는 모두의 이웃이 되는 것이다. 

 

아파트는 내가 사는 건축물에 불과하지만, ‘우리 아파트’가 되면 내가 이웃과 공유하는 따스한 공간이 된다. 나도 이웃도 이 공간을 아끼고 사랑하게 된다. 

 

아내에게 사진 가운데 있는 오렌지는 따먹어도 되겠다고 하니, 며칠 더 두었다가 따자고 한다. 아마도 우리는 이 오렌지를 4조각으로 잘라 함께 사는 조카 녀석들과 나누어 먹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오렌지가 얼마나 달고 맛있었는지 우리 친구들에게 자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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