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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11

해변의 여인 홍상수 감독의 2006년 영화 ‘해변의 여인’을 보았다. 나는 홍상수의 팬이다. 그의 영화에는 특별한 이야기는 없고, 무책임하고 나태하며 도덕적으로 해이한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 아마도 바로 그런 점이 그가 만드는 영화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그의 영화에는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일들이 자주 등장한다. 주인공들이 나누는 대화도 한 번쯤은 들어본, 언젠가 나도 해본 말들이다. 지질한 영화감독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런 감독들은 후배나 친구의 여자를, 길에서 마주친 여자를 탐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녀들은 쉽게 그들의 품에 안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마음에 품었을 환상을 그는 거침없이 영화의 소재로 삼는다. 이 영화도 다르지 않다. 후배 커플과 함께 여행을 떠난 영화감독 ‘중래’는 후배의 여자 친.. 2022. 1. 14.
휴가지에서 만나는 사람들 ‘에밀리 헨리’의 장편소설 ‘우리가 휴가지에서 만나는 사람들’(People We Meet on Vacation)은 달달한 연애소설이다. 여행 저널리스트인 ‘파피’는 매년 여름 대학시절 친구인 ‘알렉스’와 여행을 한다. 그녀가 고등학교 영어선생인 알렉스와 마지막 여행을 한 것은 2년 전의 일이다. 크로아티아 여행 이후 둘은 사이가 멀어진 상태.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 요즘, 파피의 친구 ‘레이첼’은 그녀에게 알렉스에게 다시 연락을 해 보라고 권한다. 책은 각 장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파피와 알렉스는 12년 전 시카고 대학에서 만났다. 두 사람 모두 오하이오 주 '린필드'가 고향이라, 명절을 맞아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오게 된다. 파피는 요란하고 다소 이상한 부모 밑에서 자랐고, .. 2021. 10. 7.
설국 40여 년 만에 '설국'을 다시 읽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 작품으로 1968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감각적 문체와 섬세한 심리 묘사로 일본 문학사에서 최고의 서정 소설이라고 평가받는 작품이지만 나는 깊은 인상은 받지 못했다. 어쩌면 일본어와 한국어 사이의 얇은 벽, 일본인과 한국인 사이에 흐르는 정서의 차이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소설에는 세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물려받은 유산으로 무위도식하며 여자를 보려고 눈의 고장을 찾는 시마무라는 외국 무용의 비평이나 프랑스 문학의 번역 등을 하는 문필가다. 그에게는 아내와 자식이 있다. 고마코는 어린 나이에 남편이 죽자 온천으로 들어왔다. 춤 선생의 아들인 유키오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게이샤로 일을 하게 되고, 시마무라와 사랑에 빠진다.. 2020. 10. 30.
사랑은 기다림이다 나는 한동안 이놈들이 길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늘 골목에서 어슬렁거렸고 가끔은 담을 타고 우리 집 뒷마당과 뒷동산을 제집처럼 헤집고 다녔다. 우리 집 왼쪽 옆집에는 ‘와니타’라는 할머니가 사는데, 얼마 전부터 손녀딸이라는 40대 여성이 함께 산다. 그녀는 몸 또는 마음에 병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늘 집에 있다. 겨울에는 가끔 집에서 나와 담배를 피우더니, 날이 따듯해지자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녀가 고양이들과 친해진 것도 그 무렵의 일이 아닌가 싶다. 어느 주말 아침, 고양이들이 창문 앞에 앉아 그녀를 불러대고 있었다. ‘냐옹, 냐아옹’ 야속하게도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더 크게, ‘냐옹, 냐아옹’ 그날 그녀가 언제 나왔는지는 알 수 없다. 그 후 그녀가 고양이들에게 먹.. 2020. 8.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