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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설국

by 동쪽구름 2020. 10. 30.

40여 년 만에 '설국'을 다시 읽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 작품으로 1968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감각적 문체와 섬세한 심리 묘사로 일본 문학사에서 최고의 서정 소설이라고 평가받는 작품이지만 나는 깊은 인상은 받지 못했다. 어쩌면 일본어와 한국어 사이의 얇은 벽, 일본인과 한국인 사이에 흐르는 정서의 차이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소설에는 세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물려받은 유산으로 무위도식하며 여자를 보려고 눈의 고장을 찾는 시마무라는 외국 무용의 비평이나 프랑스 문학의 번역 등을 하는 문필가다. 그에게는 아내와 자식이 있다.

 

고마코는 어린 나이에 남편이 죽자 온천으로 들어왔다. 춤 선생의 아들인 유키오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게이샤로 일을 하게 되고, 시마무라와 사랑에 빠진다. 소문에는 유키오와 혼담 이야기가 오갔다고 한다. 

 

요코는 도시로 나간 유키오의 새로운 애인이다. 병든 남자를 간호하기 위해 간호사 공부를 했다. 유키오와 함께 온천 마을에 돌아와 그가 죽는 후 계속 머물러 산다. 소설의 끝에 화재 사건으로 죽는다.

 

시마무라가 여행을 하며 요코, 고마코 등을 만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뚜렷한 플롯이 없다. 눈의 고장에 대한 배경 묘사와 인물들의 심리를 표현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로 이어지는 시작은 문장의 아름다움과 서정성을 잘 살린 첫 문장으로 유명하다.

 

소설은 시마무라가 게이샤인 고마코와의 만남을 떠올리며 눈 고장의 온천을 다시 찾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는 기차 안에서 병들어 죽음을 앞둔 춤선생의 아들과 그의 애인 요코를 보고 그녀에게 알 수 없는 신비로운 감정을 느낀다.

 

시마무라가 고마코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그녀에게 여자를 불러 달라고 한다. 60,70년대 한국 소설이나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타지로 출장을 가거나 여행을 간 남자는 여관방에서 여자를 불러 하룻밤 사랑을 나눈다. 

 

시마무라는 눈 고장에 머무는 동안 고마코가 순결한 영혼을 지닌 여자임을 느끼게 되고, 그녀는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유키오와 고마코가 약혼자 사이였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그녀는 한사코 부인한다. 유키오는 죽으며 고마코를 찾지만, 그녀는 그의 임종을 보지 않는다.

 

도쿄로 돌아갔던 시마무라는 1년 후 다시 눈 고장을 찾아오고, 돌아온 그는 유키오의 무덤에서 요코를 발견한다. 영화 상영을 하던 창고가 불에 타는 것을 발견한 시마무라와 고마코는 은하수가 흐르는 밤을 가로질러 화재 현장에 달려간다. 요코는 창고 2층에서 뛰어내리다 죽게 된다. 코마코가 죽은 그녀의 시신을 부둥켜안을 때, 멀찌기 서 있던 시마무라는 눈을 들어 하늘을 본다. 순간, 그는 은하수가 자신의 속으로 흘러 들어감을 느낀다.

 

두 여인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스며있는 작품이다. 고마코는 약혼자의 병을 고치기 위해 기생이 되어 돈을 보내지만, 남자는 도시에서 새로운 연인을 만난다. 새로운 연인은 정성으로 그를 간호하다 약혼녀가 있는 남자의 집으로 돌아오고, 두 여인은 서로를 안쓰러워한다. 버젓이 아내가 있는 시마무라는 게이샤와 바람을 피우고,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새로운 여자, 유키오를 몰래 탐내기까지 한다. 1930년대 일본인들의 정서가 담긴 내용이 아닌가 싶다.

 

남녀의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랑은 대가 없는 희생인가? 사랑은 육적인 것인가, 아니며 영혼의 교감인가?

 

책은 두껍지 않고, 마침 가을을 맞아 처음으로 기온이 떨어진 주말에 읽어, 눈과 죽음의 차가움이 가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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