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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슬픈 외국어

by 동쪽구름 2020. 11. 10.

한 달에 한번 정도 알라딘 중고서적 사이트에 들어가 책을 산다. DHL 항공편으로 오기 때문에 주문하면 3-4일 내로 도착한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책을 고르다가 하루키의 책이 나오면 무조건 산다. 하루키니까 믿고 산다고 해야 할까. 얼마 전에는 ‘슬픈 외국어’라는 에세이집을 샀다. 유럽에 살며 쓴 글을 모아 낸 책이 ‘먼 북소리’였고, 그 후 일본에 돌아가 1년 정도 살다가, 미국에 와서 3-4년 살며 쓴 글을 모은 책이다.

 

잡지에 연재했던 글을 정리하고, 더 하고 싶은 이야기는 ‘뒷이야기’라고 해서 각 꼭지 끝에 달아 놓았다. 한국에는 1996년에 초판이 나온 후, 내가 산 책은 2010년에 나온 29쇄다. 그 후 얼마나 더 팔렸는지는 모르지만 과연 하루키의 인기를 짐작케 한다. 

 

유럽에 머물며 공전의 베스트셀러 ‘상실의 시대’를 썼고, 미국에 머물면서는 ‘태엽 감는 새’라는 긴 장편소설을 썼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자기네들이 만든 차는 미국에 팔아먹으며 미국 차는 사지 않는 것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미국 집에는 차를 댈 수 있는 널찍한 ‘drive way’(우리 집 드라이브 웨이에는 3-4를 댈 수 있다)가 있지만, 일본집에는 미국차를 2대씩 댈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39 page)

 

미국의 동부 명문대학의 속물근성을 이야기한 글도 있다. 그가 있던 프린스턴 대학의 사람들은 지역신문은 보지 않고 ‘뉴욕 타임스’를 보며, 맥주는 ‘하이네킨,’ ‘기네스,’ ‘벡스’ 따위를 마신다. 하루키는 ‘버드와이저’를 좋아해, 평소에는 이것을 마시고, 손님들을 위해 수입맥주를 몇 병 냉장고에 보관했다. (46-48 page)

 

왜 유럽차는 미국에서 잘 팔리지 않는가에 대한 설명도 있다. 유럽차는 유럽의 도로 사정에 맞게 만든 차다. 고속도로에서 속력을 내 보면 그 성능의 우수함을 할 수 있다고 한다. 55마일 속도제한 (지금은 대부분의 고속도로는 65마일이다)을 하는 미국에서는 그 성능을 발휘할 수 없다. 미국 차는 상대적으로 안락하고 운전하기 좋지만, 드라이브하기를 즐기는 마니아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137-138 page)

 

미국에 살며 그의 아내는 무슨 일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늘 궁색한 답을 내놓아야 했다. 그녀는 그가 쓴 글을 읽고 개인 편집자 겸 비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을 그것을 그녀의 직업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나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자주 했었다. 아내는 따로 직장에 다니지 않는다. 그녀는 내 ‘도우미’다. 직장에 다닐 때는 매일 아침 내 머리를 다듬어 주고, 도시락을 싸 주었고, 내가 입을 옷을 세탁하고 다림질하였으며, 그밖에 보통은 남자들이 하는 집안일을 모두 도맡아 했다. 회사 일로 출장을 가야 할 때면 함께 가서 내 시중을 들어주었다.

 

요즘은 내가 그녀에게 의존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거의 모든 외출 시 아내가 함께 가서 내 휠체어를 밀어주거나 가방을 들어준다. 

 

맞벌이가 일반화된 미국에서는 여자도 직업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같은 것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늘 아내가 내 동업자라고 생각한다. 하루키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148-149 page)

 

미국 영화들이 재미없어진 것에 대한 그의 설명도 재미있다. 할리우드는 더 이상 독창적인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어디서 본 듯한, 보잘것없는 시리즈물, 재탕의 홍수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정말 맞는 말이다. 아카데미 시상식 같은 곳에서 영화배우들이 잘난 척하며 설교를 하거나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도 꼬집고 있다. 동감이다. (198-199 page)

 

학력과 지위를 내세우기 좋아하는 일본인들을 꼬집는 글도 있다. 미국에는 일본 정부나 기업의 돈으로 연수를 나와있는 일본인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물론 이들은 일류대학을 나온 엘리트들이다. 이들이 앞세우는 것은 자신의 직위와 출신 대학, 어떤 이들은 예비고사 성적 따위도 거론한다.

 

한인사회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내 또래의 한인들이 처음 만나 나누는 인사에는 꼭 학번과 출신 대학이 들어간다. 같은 대학 출신이라도 캠퍼스와 학과에 따라 차등을 둔다. (233-235 page)

 

이 책은 내가 사는 미국에서의 경험을 쓴 책이라 더욱 재미있게 공감하며 읽었다. 역시 하루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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