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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사랑은 기다림이다

by 동쪽구름 2020. 8. 3.

나는 한동안 이놈들이 길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늘 골목에서 어슬렁거렸고 가끔은 담을 타고 우리 집 뒷마당과 뒷동산을 제집처럼 헤집고 다녔다.

 

우리 집 왼쪽 옆집에는 ‘와니타’라는 할머니가 사는데, 얼마 전부터 손녀딸이라는 40대 여성이 함께 산다. 그녀는 몸 또는 마음에 병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늘 집에 있다. 겨울에는 가끔 집에서 나와 담배를 피우더니, 날이 따듯해지자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녀가 고양이들과 친해진 것도 그 무렵의 일이 아닌가 싶다.    

 

어느 주말 아침, 고양이들이 창문 앞에 앉아 그녀를 불러대고 있었다. ‘냐옹, 냐아옹’ 야속하게도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더 크게, ‘냐옹, 냐아옹’ 그날 그녀가 언제 나왔는지는 알 수 없다.

 

그 후 그녀가 고양이들에게 먹이나 물도 주고 가끔은 안고 쓰다듬어 주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알고 보니 이놈들은 집없는 길냥이들이 아니었다. 우리 집 오른쪽으로 두 집 건너에 사는 ‘카알라’라는 여인의 고양이들이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고양이들은 집에는 늘 밖에서 지낸다.

 

옆집 마당으로 나가는 문에는 고양이들이 드나들지 못하게 가림막을 달아 놓았다. 아마도 할머니가 달아 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 전에는 담을 넘어 드나들던 집이다. 그러나 요즘 고양이들은 담을 넘지 않는다. 갈 수 있는 곳과 가서는 안 되는 곳을 아는 것 같다. 

 

우리 집 포치 앞에는 내가 드나들기 위해 나무로 만든 휠체어 경사로가 있다. 경사로 밑은 비어 있어 아늑한 보금자리 같다. 고양이들은 햇볕이 뜨거운 한낮에는 경사로 아래 그늘에 들어가 잠을 자거나 옆집의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처음에는 내가 나오면 얼른 옆집으로 도망가던 녀석들이 이제는 게슴츠레 눈만 뜨고 쳐다보기만 한다. 나는 가능하면 이놈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아내에게도 음식 따위는 주지 말라고 경고해 두었다. 자칫 정이 들까 조심하는 것이다. 일단 정을 주면 힘들어진다.

 

며칠 전 주말, 아내와 집을 나서는데 고양이들이 목을 빼고 하염없이 옆집 뒷마당을 바라보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오라고 부르지도 않고, 담을 넘지도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앉아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끝없는 기다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염없이 그녀를 기다리는 길냥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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