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모음104 TV 가 죽었다 침실에 있던 TV 가 죽었다. 5-6년 전, 내 생일에 아이들이 사준 것이다. 거실에 있는 삼성 TV는 이보다 훨씬 오래된 것인데도 잘 지내고 있는데, 전자제품이나 사람이나 가는 길에는 순서가 없는 모양이다. 내가 처음 TV를 접한 것은 6-7살 때의 일이 아닌가 싶다. 국영 방송인 KBS 가 개국을 하던 무렵이다. 부모님과 함께 2층 큰 방에서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드라마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원자폭탄이 터져 흉측한 모습으로 변한 주인공이 무섭게 느껴졌었다. 60년대 TV는 콘솔 스타일로 양쪽 끝에는 스피커가 들어 있고, 가운데에는 문이 있어, 이걸 열면 화면이 나왔다. TV 방송국은 하나, 저녁 방송만 했다. 그 후 방송국이 두 개 더 생기며 채널 다툼이 생겨났다. 아버지와 우리 두 형제는 운동.. 2021. 8. 28. 다시 쓰는 버킷 리스트 여러 해 전에 ‘나의 버킷 리스트’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는 이 글에서 은퇴 후 아내와 개조한 밴 차를 타고 미국을 횡단하며 여행 사진과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리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작은 사랑방 카페를 열어, 아침이면 찾아오는 이들에게 향긋한 커피와 아내가 구운 맛난 스콘이나 시너몬 롤을 대접하고 싶다고 썼다. 가게 벽에는 아내가 그린 그림을 걸고, 커피 콩이나 밀가루 가격이 올라도 커피값은 올리지 않겠노라고 했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요즘, 버킷 리스트를 조금씩 수정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제는 차를 타고 먼길을 여행하며 매일 낯선 곳에서 잠자는 일은 다소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버킷 리스트를 작성한 직후, 어린 조카들이 우리와 함께 살게 되었기에 계획에 차질.. 2021. 8. 4. 텃밭에서... 어떤 이들은 집에서 키우는 개나 고양이 때문에 마음껏 여행도 하지 못하고 외출을 했다가도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텃밭 때문에 쉽게 집을 비우지 못한다. 텃밭의 주인은 아내다. 봄에는 2-3일에 한번 물을 주더니, 요즘은 거의 매일 저녁 물을 준다. 내가 늦잠을 자는 날은 아침에도 슬그머니 나가 물을 주고 온다. 남가주의 여름 태양은 그 열기가 대단하다. 아침에 물을 주어도 한낮이 되면 텃밭의 작물들은 모두 축 늘어져 보기가 안타까울 지경이다. 결국 아내가 그늘막을 만들고 파라솔을 펼쳐 놓아 한나절 햇빛을 가리게 되었다. 텃밭 가꾸기는 마이너스 사업이다. 봄에 흙과 거름, 씨앗과 모종을 사며 들어가는 시설투자는 그렇다 쳐도 여름내 들어가는 물값과 노동을 생각하면 마켓에서 사 먹는 것이 훨씬.. 2021. 6. 26. 작은 이별들 나이가 들며 겪는 일 중의 하나는 나와 익숙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 곁에서 멀어져 가는 일이 아닌가 싶다. 시작은 몇 년 전 내가 20년이나 단골로 다니던 자동차 정비소의 주인 ‘밥’이 갑자기 사라진 일이다. 우리 아이들이 10-15만 마일이나 된 10년도 넘은 낡은 차들을 마음 놓고 타고 다녔던 것은 순전히 그의 덕이었는데, 어느 날 가보니 자리에 없었다. 아파서 병원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이웃집 주유소 주인에게서 그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암을 너무 늦게 발견했다고 한다. 그 후 지금까지 나는 새로운 정비소를 찾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비용을 지불하며 딜러에 다니고 있다. 두 번째 이별은 내 주치의였다. 그는 머리가 빠져 훤하게 드러난 이마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머리숱이.. 2021. 5. 26.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2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