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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54

아버지 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30여 년 동안, 6월 셋째 주일은 아버지의 날이자 할아버지의 날이었다. 지난 5년 동안, 아버지 없는 아버지 날을 보냈다. 아버지가 안 계시니 카드 쓸 일도 없었다. 6월 초의 일이다. 장에 다녀온 아내가 카드를 한 뭉치 꺼내 놓더니 아이들에게 쓰라고 한다. 열어 보니 아버지 날 카드들이다. 우리 집 남자들은 이제 모두 아버지니 이제부터는 아이들에게 카드를 쓰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미국에는 이런저런 날도 많고, 그런 날에 맞는 카드도 종류별로 많다. 아들에게 보내는 아버지 날 카드도 있고, 사위에게 보는 것도 있고, 남편에게 보내는 것도 있다. 난생처음 아이들에게 아버지 날 카드를 써서 보냈다. 나이가 드니 앞날보다는 지난날을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이미 지나 온 길.. 2021. 6. 23.
감자 아내는 과일이나 야채 껍질을 감나무 밑에 묻곤 한다. 거름이 되라고 주는 것이다. 가끔씩 그 자리에서 싹이 나온다. 그렇게 해서 사과나무가 나왔고, 토마토가 열렸으며, 몇 년 전에는 수박과 참외도 자란 적이 있다. 지난봄 감자 껍질을 버린 자리에 싹이 돋았다. 껍질에 붙어있던 눈이 자란 것이다. 아내가 거름을 주고 물을 주니 잘 자랐다. 어제저녁 텃밭에 물을 주던 아내가 “어디 감자나 캐볼까?” 하며 삽을 들고 살살 땅을 파 헤치니, 땅 속에서 이놈들이 나왔다. 신기하기도 하고 귀하기도 하다. 텃밭은 아내의 놀이터다. 아이들이 모래상자 안에 들어가 놀듯이 아내는 텃밭에 들어가 흙을 만지며 노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그런 아내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며 대리 만족을 얻는다. 며칠 사이에 날씨가 많.. 2021. 6. 16.
작은 아버지 동생 부부와 함께 며칠 전 89세 생신을 맞으신 작은 아버지를 뵙고 왔다. LA 동남부 리버사이드 카운티에 있는 신도시 매니피 (Menifee)에서 55세 이상 시니어들만 사는 주택단지에 20여 년째 살고 계시다. 작년에는 많이 아프셔 한동안 병원에 입원도 하셨었다. 그놈의 코로나 탓에 1년 넘게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나도 백신을 맞았고, 작은 아버지 내외분도 백신을 맞으셨다고 해서 갔다. 마침 간호사가 오는 날이니 조금 일찍 와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고 해서 토요일 아침 일찌감치 길을 나섰다. 매니피는 우리 집에서 100마일이 넘는 거리며, 차로 2 시간 이상 걸린다. 가서 뵈니 생각했던 것보다는 상태가 좋아 보였지만, 내가 기억하는 작은 아버지의 모습은 아니다. 작은 어머니는 늘 깔끔.. 2021. 3. 16.
하린아, 생일 축하해! 코로나가 바꾸어 놓을 세상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던 무렵 태어난 손녀 ‘하린’이가 벌써 돌이 되었다. 그때는 아직 코로나가 확산되지 않았던 때라 우린 마스크도 없이 병원에 가서 아기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코로나 사태. 딸이 낳은 아이라 더욱 정이 가는 손녀지만 이제껏 안아 본 것은 손가락으로 꼽아 볼 정도다. 사진과 비디오로 자라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화상 통화지만 그나마 자주 본다고 요즘은 알아보고 손을 흔들고 곁에서 엄마가 시키면 인사도 하고 전화기에 뽀뽀도 한다. 남들이 보면 유난을 떤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동안 보건당국과 정부의 지침을 잘 준수해 왔다. 지난 3월 이후, 가족 모임도 하지 않았고, 식당에 가서 외식을 한 적도 없다. 그 덕인지 감기 한번 안 걸리고 잘 지내왔.. 2021.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