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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수도원 기행

by 동쪽구름 2023. 12. 22.

정말 오래 기다린 끝에 공지영의 책 ‘수도원 기행’을 손에 넣었다. 미국에서 한국책을 새 책으로 사려면 꽤 큰 출혈이다. 그래서 알라딘 중고책방에서 중고책을 산다. 중고책방의 단점은 원하는 책을 마음대로 살 수 없다는 점이다. 수도원 기행이 그랬다. 몇 년 전부터 이 책을 읽고 싶었는데, 책을 구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중고책은 정가의 절반이하로 거래가 된다. 하지만 미국에서 사는 중고책은 한국 가격의 두 배에 별도의 송료를 지불해야 한다. 펜데믹 이전에는 $50 이상 구매하고, 3-4주 걸리는 배편을 이용하면 배송료가 따로 없었다. 펜데믹이 시작되며 배편은 없어졌고, DHL 항공편 밖에 없다. 3-4일 내로 책을 받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15 가량의 배송료를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두 번 사이트를 방문하여 모니터 하다가,  5-6권 정도를 모아서 한 번에 주문한다. 책 가격에도 내 나름 원칙이 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11.99이 상한선이다. 대개는 $10선으로 제한을 하려고 한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은 20년이 넘은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제가 수도원 방문이다 보니 세월의 영향은 별로 받지 않는 내용이다. 18년 냉담을 끝내고 교회로 돌아온 그녀가 유럽의 수도원을 방문하는 이야기다. 유럽의 수도원을 소개하고,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녀의 신앙고백서이기도 하다. 

 

18년 만에 고해실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눈물이 터져 엉엉 우는 그녀에게 젊은 신부가 휴지를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참 어려운 길 오셨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발걸음으로 이미 당신은 죄 사함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18년 동안 걸어온 길이 멀고 고단한 길임이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64-65 페이지) 

 

이것과 조금 다르긴 하지만 내게도 이런 특별한 경험이 있다. 아직 세례를 받지 않고 성당에 다닐 때의 일이다. 성탄 무렵, 구역 반장의 집에서 가정미사를 하게 되었다. 구역 반원들에게 성체를 나누어 주던 신부님이 내 앞으로 왔다. 성체 대신에 머리에 손을 얻고 강복을 주었는데, 그때 귀가 아닌 가슴으로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잘 왔다. 네가 이제껏 살아온 힘든 삶을 내가 다 알고 있다. 이제 내 안에서 평화와 안식을 찾아라.” 

 

여행을 마치고 공항으로 가는 기차에서 묵주기도를 마치던 그녀는 "내가 (여행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순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것이다... 결국  세상 모두가 수도원이고 내가  위에서 만단  모든 사람들이 사실은 수도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들을 만나려고 내가  길을 떠났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249-250 페이지) 

 

내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가 유럽여행이었는데, 이제 여행보다는 수도원 방문으로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매우 낮은 소망이다. 수백 년 전에 지어진 유럽의 수도원에 장애인 편의시설이 있을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마음으로는 이미 수도원에 다녀온 듯싶다. 

 

그녀는 13년 후, ‘수도원 기행 2’(분도출판사)를 썼다. 중고책방에 찾아보았지만, 나와있는 것이 없다. 기다림도 미덕이다. 때가 되면, 그때 이 책도 내 앞에 나타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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