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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라틴어 수업

by 동쪽구름 2023. 6. 21.

‘한동일’ 교수의 ‘라틴어 수업’은 내가 오랫동안 읽으려고 별러온 책이다. 나는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우편주문으로 책을 산다. 책을 살 때는 나름 원칙이 있다. 선물하기 위해서는 새 책을 사지만, 내가 읽기 위해서는 절대로 새 책은 사지 않는다. 첫째, 미국에서 한국 책을 사려면 별도의 송료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새 책은 상대적으로 비싸다. 정기적으로 중고서점을 둘러보면 적당한 가격에 나온 보고 싶은 책들을 발견하게 된다. 둘째, 중고 책에서는 먼저 읽은 사람이 남겨 놓은 메모나 노트 등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라틴어 수업은 한동일 교수가 서강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강의 내용을 글로 정리한 책이다. 

 

그는 겸손한 사람이 공부를 잘한다고 말한다. 겸손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실패 후에 좌절하는 것은 실패한 나가 나의 전부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한 번의 실패는 수많은 내 모습 중 하나일 뿐이다. (83 페이지) 

 

인생은 우리의 뜻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갈 때가 많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결과와 상관없이 해야 할 일을 해나가는 것이다. (86 페이지) 

 

모든 관계는 상호주의 원칙 위에 존재한다. 여기서 상호주의란 ‘네가 주기 때문에 나도 준다’는 의미다. 과연 나는 남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121 페이지) 

 

우리는 북유럽 사회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들이 미래 세대에 투자하는 제도적, 사회적 노력은 보지 않는다. 나무는 모든 에너지와 역량을 가장 끝에 있는 꽃과 이파리에 몰아준다. 자연은 이렇듯 미래 세대에 모든 것을 투자한다. (178 페이지) 

 

“우리가 아는 만큼, 그만큼 본다.” 이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깨어 있고 바깥을 향해서도 열려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야 책 한 권을 읽어도 가벼이 읽지 않고 음악 한 곡을 들어도 흘려듣지 않게 된다. (216 페이지) 

 

사막에 여행을 갔던 그는 그곳에서 심장이 발작을 일으켜 죽을 고비를 넘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나중에 죽어서 하늘에 갔을 때 신은 무엇을 기준으로 나를 판단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인간을 사랑하는 신이라면 우리의 기억을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을까. 이 땅에서 용서하지 못하고 불편하게 품고 간 기억과 아픔들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지 않을까. 그래서 그는 좋은 기억만 가지고 가야겠다고 결심한다. 

 

“너희가 무엇이든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려 있을 것이다.”(마태오복음 18장 18절) (265 페이지) 

 

책의 끝부분에는 그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 쓴 글이 들어 있다. 여러 명의 학생들이 중간고사 과제였던 ‘데 메아 비타’(나의 인생에 대하여)를 그들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20년 남짓 살아온 자신의 생에 대하여 생각하고 글로 쓰며 상처를 치유하고 생의 방향을 찾았다고 한다. 

 

나는 연령과 상관없이 모든 이들에게 지나 온 삶을 글로 써보라고 권하고 싶다. 돌아보고 싶지 않은 기억을 다시 꺼내는 일이야 말로 치유의 시작이다. 

 

책을 읽은 후에는 독서노트를 남긴다는 생각으로 ‘책 이야기’에 글을 올린다. 여기 실린 글들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알겠지만, 책을 추천하거나 평가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이 책만은 강추한다. 기회가 되면 꼭 읽어보시라. 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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