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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저만치 혼자서

by 동쪽구름 2023. 6. 25.

김훈의 소설집 ‘저만치 혼자서’에는 7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명태와 고래 – 어부 ‘이춘개’는 배를 타고 고기떼를 따라가다 조류에 밀려 북한 해역으로 들어가 북한군에 잡힌다. 조사를 받고 몇 달 후 풀려나 남한으로 돌아 오지만 송환된 지 6년 후에 간첩죄로 체포되어 14년 형을 받고 교도소로 보내진다. 출감 후, 가족이 모두 떠난 향일포에 돌아온 그는 두 달 뒤에 물에 빠져 죽는다. 
 
작가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시절을 거치며 자행되었던 이념과 공포의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당하게 감옥에 보내지고 죽음을 당했던가. 부끄러운 흑역사다. 
 
손 – 주인공인 나에게는 특수강간범으로 기소된 아들이 있다. 나는 경찰의 면담요청에 참고인 자격으로 경찰서를 찾았고, 그곳에서 내 아들에게 강간당한 후 강물에 뛰어들어 죽은 여자아이의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그 역시 참고인으로 불려 온 것이다. 
 
저녁 내기 장기 – 저녁 내기 장기를 두는 두 노인의 이야기다. 구두공장을 하던 ‘이춘갑’은 IMF 때 도산을 했다. 유일하게 남은 재산인 아파트를 지키기 위해 아내와 이혼을 하고, 결국 그 이혼은 이별로 이어졌다. 오피스텔 일층에서 구두 수선점을 하며 산다. 그와 내기 장기를 두는 ‘오개남’은 오피스텔 관리사무실에 권리금을 내고 쓰레기장에서 폐지와 유리병 따위를 수거한다. 
 
대장 내시경 검사 – 용종이 발견되어 3년에 한 번씩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아야 하는 나는 이제 70이 넘어 반드시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 아내와는 이혼했고, 딸은 바쁘다. 결국 일주일에 한 번 아파트를 청소해 주는 도우미에게 도움을 청한다. 40년 전 미국으로 가며 헤어졌던 옛 여자친구에게서 편지가 온다. 한국에 들어간 아들의 취직을 부탁하는 내용이다. 
 
영자 – 노량진에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구준생’들의 이야기다. 
 
나는 미국에서 31년 주 공무원으로 일했다. 실무와는 별 상관도 없는 한국의 공무원 시험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48GOP – 분단의 비극 때문에 남북의 젊은이들이 잠을 쫓고 언발을 녹이며 대치하고 있는 GOP 이야기다. 6.25 때 전사한 할아버지를 둔 임하사는 곧 전역을 앞두고 있다. 전사자 유해 발굴단이 주둔지역을 발굴하게 되어 작업에 참여한다. 죽음을 앞둔 그의 할머니는 “들쑤시지 마. 냅둬. 제발 냅둬” 하며 남편의 유해를 찾지 말라고 당부한다. 
 
저만치 혼자서 – 늙은 수녀들이 마지막을 맞게 되는 수녀원의 이야기다. 
 
저자는 책말미에 ‘군말’이라는 글을 실어 작품을 쓰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흔히 볼 수 없는 일이다. 소설이 픽션이긴 하지만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고 작가는 보고 듣고 경험한 이야기를 작품에 넣게 된다. 
 
대부분의 단편소설은 스냅사진과 같아 독자는 주인공의 삶을 지나가듯 보게 된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장편소설의 축약본 같다. 마치 더운 여름날 버스 종점 구멍가게 앞 비치파라솔 밑에서 또는 시골 마을 나무그늘 아래서 듣는 낯선 이의 이야기 같다. 
 
다소 무거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답답하고 우울한 이야기들이다. 어디선가 들었던, 또는 보았던 일들 같아 결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작가 김훈은 나보다 7살 연상이다. 아마도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은 내 나이 즈음에 쓴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늘 친근하게 다가오고 공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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