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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하루키의 여행법

by 동쪽구름 2022. 12. 2.

‘하루키의 여행법’은 일상을 떠나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것을 먹고 보고 경험한 것을 기록하는 일반적인 여행기와는 다른 책이다. 말 그대로 하루키식의 여행을 담은 책이다.

 

대부분은 취재를 위해 목적을 가지고 떠났던 여행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하루키는 여러 차례 일본을 떠나 외국에서 장기체류를 했었다. 유럽에서는 집을 빌려 오래 머물며 책을 썼으며, 미국에서도 오랜 기간 살았다. 그래서 좀 더 특별한 여행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책에는 일곱 편의 여행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스트 햄프턴 – 유명한 작가와 배우들이 모여사는 마을이다. 남자가 집을 관리하고 그의 여자 친구가 요리를 하는 여관에 묵었다. 주인 ‘론’은 18세기에 지어진 집을 사서 손수 집을 수리하고 부모와 조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가구와 식기로 여관을 꾸몄다. 하루키는 이를 두고 “미국이라는 사회가 지니고 있는 속 깊은 건전함”이라고 말한다. 

 

무인도, 까마귀 섬의 비밀 – 편의 시설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무인도다. 사흘 예정으로 사진작가와 둘이 이 섬에 들어 간 하루키는 낚시와 수영을 하며 소일을 하려고 계획했지만 바닥에 돌이 많아 낚시를 포기한다. 밤이 되자 낮에는 볼 수 없었던 이름도 모르는 벌레들이 쏟아져 나와 그들의 세상이 된다.

 

난 이 대목에서 십 수년 전 아내와 내가 경험했던 말리부 산속에서의 캠핑여행을 생각하게 되었다. 밤이 되어 텐트에 들어가 렌턴을 켜니 개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두 마리가 아니고 아예 긴 줄을 이어 지나가고 있었다. 눈을 들어 위를 보니 텐트 바깥쪽에도 개미들이 새카맣게 붙어 있었다. 텐트 천 사이로 불빛에 비추인 개미의 그림자는 실물보다 훨씬 더 공포스럽고 커 보였다. 낮에 볕을 비해 나무 밑에 텐트를 쳤는데 개미들이 줄을 지어 그 나무에 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차를 타고 (30분 거리의) 집으로 돌아와서 잤다. 다음날 아침에 가니 개미들은 흔적도 없었다. 

 

하루키도 같은 경험을 한다. 밤새 벌레들에게 시달리며 자다말다를 반복하다 날이 밝으니, 벌레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음날 두 사람은 밤새 안부를 물으러 온 배를 타고 섬에서 나온다.

 

멕시코 대여행 – 보통 멕시코를 찾는 관광객들은 리조트나 유명 관광지를 찾아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간다. 대중교통수단이나 차를 빌려 멕시코를 여행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키는 바로 그런 여행을 한다. 버스를 타고 멕시칸 마을을 찾아다녔다. 어느 구간에서는 무장 경찰이 차에 올라 경계를 선다. 무장강도나 반군들이 출몰하기 때문이다. 시체를 싣고 가는 트럭을 목격하기도 한다. 

 

우동 맛 여행 – 내가 제일 재미있게 읽은 이야기다. 우동으로 유명한 가가와 현을 찾아가 몇 날 며칠을 우동만 먹으며 했던 우동 여행이다. 별다른 내용물 없이 간장, 청파, 겨자, MSG 정도로 맛을 낸 우동이지만 무척 맛있었다고 한다. 어떤 집에 가면 손님이 자기 우동에 넣어 먹을 무나 생강을 갈기도 하고, 주인이 가게를 비웠으면 손님이 끓여 먹고 나가기도 한다. 

 

가가와 현의 우동이 유명한 이유는 이곳에서 좋은 밀이 나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제 가가와 현의 우동은 호주에서 수입하는 ‘ASW’라는 밀로 만든다. 호주에서 일본 우동면에 적합하게 밀의 품종을 개량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으며 오래전 PBS에서 보았던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그리스에 해양대학을 세우고 배도 사 주었다. 이 대학에서는 일본인이 좋아하는 해산물 잡는 기술을 가르친다. 이 학교 출신 선장들은 고기를 잡아 몽땅 일본으로 수출한다. 

 

노몬한의 철의 묘지 – 1939년 만주에 주둔한 일본군과 소련 몽고 연합군 사이에 만주국 국경선을 둘러싸고 벌어진 노몬한 전쟁의 격전지를 찾아간다. 일본 역사책에서도 말하지 않는 노몬한 전쟁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하루키는 이야기한다. 

 

쓸모없는 넓은 땅을 가진 몽고, 하루키는 그곳에서 만난 가난한 몽고인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메리카 대륙을 가로질러 – 하루키는 사진작가와 함께 동부에서 시작해서 캘리포니아까지 자동차로 미국을 횡단한다. 아기자기하게 볼 것이 많은 남부가 아닌 가도 가도 벌판 뿐인 북부 루트를 선택했다. 이 여행을 하며 하루키는 미국의 단조로움을 보게 된다. 어디 가나 비슷한 모양의 모텔, 식당, 그리고 식당의 메뉴. 정말 미국은 그렇다. 40여 년 전 내가 미국에 와서 자주 가던 식당 ‘Norms’ 나 ‘Denny’s’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이 없다. 메뉴도 거의 그대로다. 

 

유타주에서는 술을 사지 못해 차 안에 남아 있던 맥주 한 캔을 사진작가와 나누어 마시고, 라스베가스에서는 도박으로 약간의 돈을 따서 헌 LP 판을 산다. 그리고 LA에 도착하며 “미국은 정말 거대한 나라이고,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여행을 했구나.”라고 쓰고 있다. 

 

고베까지의 도보 여행 – 마지막 장에서 하루키는 자기가 자랐던 고장과 거리를 걸어서 여행한다. 변해버린 거리에서 과거를 추억한다. 

 

‘작가의 말’에서 하루키는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세밀하게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작은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짤막한 메모를 하거나 그림을 그린다. 그는 이를 두고 바다에 부표를 띄우는 것과 같다고 했다. ‘보자기 아주머니’라고 적어 놓을 것을 나중에 보면, 터키와 이란 국경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만났던 이색적인 아주머니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는 카메라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여행지에서는 눈앞의 풍경에 자신을 몰입한다. 스스로가 녹음기가 되고 사진기가 되어 온몸으로 받아 온 것이라야 살아있는 글이 나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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