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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

by 동쪽구름 2022. 11. 3.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는 작가 최인호의 사후에 출간된 책이다. 유명 작가는 죽은 후에도 계속 책을 낸다. 최인호의 경우에도 유고집 ‘눈물,’ 딸과 손녀와의 사랑을 기록한 ‘나의 딸의 딸,’ 법정스님의 입적 5주기를 맞아 스님과의 대담을 엮은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등을 포함, 5권이나 된다.

 

이 책은 그동안 작가 최인호가 각종 매체에 발표했던 산문을 모은 칼럼집이다. 1부에는 20대에서 시작해서 60대까지 쓴 글로 작가의 문체와 의식세계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2부는 주로 역사에 관한 글인데, 나는 역사를 다룬 글은 잘 읽지 않는다. 이유인즉, 글쓴이의 정치 성향이나 노선에 따라 같은 역사라도 매우 다르게 해석이 되기 때문이다. 3부는 천재를 제목으로 한 글들이며, 마지막 4부에는 문학에 대한 그의 단상들이 담겨있다.

 

내 나이 또래의 독자라면 최인호 하면 아마도 ‘별들의 고향’을 꼽을 것이다. 그 당시 정서로는 대단한 화제작이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좋아한 최인호의 소설은 월간 ‘학원’지에 연재되었던 ‘우리들의 시대’다. 청소년 잡지에 실린 글이었으니 만큼 요즘 기준으로는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연애소설이었다. 그렇다. 미성년자들(우리들)의 연애를 다룬 소설이었다. 

 

최인호는 연애소설로 유명해지자 역사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그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월간 ‘샘터’에 연재하던 소설 ‘가족’은 재미있게 보았다. 나는 그가 쓴 그런 따스한 이야기를 좋아했다. 

 

스케일이 큰 연재소설을 쓰던 그는 예수의 이야기를 쓰고, 그다음에는 다시 근사한 연애소설을 쓰려고 했다. 문화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고, 책에 실린 글에도 그렇게 적었고, 그의 책을 출간하는 출판사 편집자에게도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가 쓴 예수의 이야기를 못 읽게 된 것이 정말 아쉽다. 최인호가 쓴 예수 이야기라면 신보다는 인간 예수의 이야기를 썼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연애소설의 줄거리도 대략 구상해 놓았었다고 한다. “주인공은 제 나이 또래의 60대 남성입니다. 그런데 언젠가 한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겨 아내에게 엉엉 울면서 자신에게 찾아온 사랑을 고백합니다. 여기서 엉엉 운다는 것이 특히 중요해요. 아내는 고민 끝에 여인을 찾아가 자기 남편과 연애를 하라고 권유합니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그 이상은 노코멘트.”

 

최인호를 잃고 읽은 그의 잡문집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를 읽으며 그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천재의 죽음이 다시금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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