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이야기

아버지의 유산

by 동쪽구름 2022. 12. 7.

‘아버지의 유산’ 은 작가 ‘필립 로스’가 뇌종양이 생긴 아버지의 투병과 죽음을 지켜보는 과정을 기록한 자전적 에세이다. 1992년 전미 도서 비평가 협회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아내를 잃고 혼자 지내던 86세의 부친이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그의 부친은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평생 보험회사원으로 근무하며 관리직까지 올랐던 사람이다. 처음에는 안면근육마비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뇌에 종양이 자라고 있었다. 고령에 위험한 뇌수술을 받아야 할 고비에 처한 아버지는 결국 수술을 받지 않기로 한다. 

 

환자의 나이가 많아 수술을 받고 치료를 해도 회복의 가능성이 적을 때, 과연 고통을 감수하며 끝까지 병마와 싸우는 것이 옳은가를 생각게 하는 대목이다. 

 

로스는 이미 소설가로 유명세와 재산을 모두 갖고 있었다. 아버지 역시 큰 부자는 아니지만 남은 생을 편안하게 지낼만한 재산은 가지고 있었다. 뇌종양을 발견하기 전, 로스는 아버지에게 자신은 돈이 필요 없으니 아버지의 재산은 형과 조카들에게 상속하라고 누차 부탁을 했었다. 아버지의 병이 발견되고 유언장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로스는 자신도 아버지의 유산을 받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건 결코 돈에 대한 욕심 때문이 아니었다. 유산은 아버지가 평생 땀 흘리고 노력해서 축적한 것이며 그것을 나누어 받는다는 것은 아버지의 삶을 나누어 갖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는 결국 아버지에게 유산을 나누어 달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대신 그는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아 평생을 쓰던 면도할 때 비누거품을 담아 쓰는 컵을 건네받는다. 

 

로스는 매우 솔직하게 자신의 심경을 밝히고 있다. 평소 나는 유산은 자녀들의 재정 상태나 나를 대하는 태도와 상관없이 공평하게 나누어 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로스는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었다. 

 

아버지가 뇌종양 조직 검사를 하고 회복하며 변비에 시달리다 똥을 싸게 된다. 혼자 더디게 화장실에 가다 복도며 바닥에 온통 똥을 흘리고 만다. 로스는 나머지 식구들 몰래 혼자서 이걸 치운다. 

 

위험한 수술을 포기하고 대신 백내장 수술로 시력을 회복한 아버지는 일 년 남짓 살다가 병세가 악화된다. 그즈음에 로스는 심장으로 가는 혈관이 80-100% 막힌 것이 발견되어 수술을 받게 된다. 아버지가 놀랠까 봐 아버지에게는 비밀로 한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크게 화를 낸다. 그리고 그에게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타이른다. 

 

아들인 로스는 아버지에게 충격이 될만한 (그의 병세에 대한) 소식은 숨기거나 또는 돌려서 말하고, 가능하면 고통이 적고 편안한 마지막을 맞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아들을 염려하고 걱정한다. 

 

늙고 병든다는 것은 아무리 미화하려고 해도 아름답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받아들이고, 인내하며, 살아내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돌아가신 아버지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몇 번이나 응급실에 모시고 갔던 일, 병원 침대에 누워 링거를 맞고 계신 아버지에게 소변기를 건네던 일들을 떠올렸다. 

 

나이 든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의 책이다.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별 인사  (5) 2022.12.18
연필로 쓰기  (4) 2022.12.15
하루키의 여행법  (4) 2022.12.02
빌락시의 소년들  (3) 2022.11.16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  (3) 2022.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