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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by 동쪽구름 2022. 2. 18.

베트남계 이민자인 작가 ‘오션 브엉’의 첫 번째 소설인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On Earth We're Briefly Gorgeous)는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주인공인 내가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였다. 이 편지를 통해 어린 시절의 기억과 미국에서 자라며 겪은 일들을 그리고 있다.

 

외할머니 ‘란’은 자신보다 세배나 나이가 많은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가 도망쳐 나와 친정으로 가지만, 친정어머니는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먹고살기 위해 성노동자가 된 그녀는 미군의 아이인 혼혈의 딸을 낳게 된다. 그녀는 아이를 임신한 상태로 다른 미군을 만나 결혼을 한다. 그 딸이 자라 열일곱에 낳은 ‘내’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외할머니는 그가 악령의 손길을 피해 건강히 잘 자라라고 “Little Dog”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우리말로 하지만 “우리 강아지” 쯤 될 것이다. 

 

어느 시대나 남의 나라에 들어간 주둔군은 현지에서 성적 욕구를 해소한다. 과거 침략자들은 여자들을 겁탈했고, 다소 부유한 서구에서는 돈을 주고 성을 샀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일본에 주둔한 미군들을 달러를 주고 일본 여성들의 몸을 샀으며, 한국 전쟁 이후에는 한국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 독일군의 침략이 없었던 영국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여성들이 독일군에게 몸을 팔았다. 한국군들도 월남에서 적지 않은 수의 혼혈아를 만들지 않았던가.

 

주인공의 가족은 월남을 떠나 필리핀 난민캠프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온다. 아버지는 사라져 버리고, 어머니 ‘로즈’는 네일 샾에서 일을 해 생계를 꾸려간다. 그녀는 ‘굿윌’(Goodwill) 가게에서 헌 옷을 사 입고 즐거워한다. 낯선 타국에서 영어를 몰라 어려움을 겪는다. 70-80년대 미국으로 이민 온 한인들이 겪었던 일이기도 하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자격지심이 발동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국인들이 자신을 업신여긴다고 오해하게 된다.

 

'나'는 4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매를 맞는다. 요즘 기준으로는 엄연한 아동학대다. 내(필자)가 자라던 6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도 아이들이 매를 맞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너무 심하게 때려 주위에서 말리면, 내 자식 내가 때리는데 왜 참견이냐고 하면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무지했던 시절이다. 이것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문화권에서 자행되던 일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를 겪은 사람들이 자녀를 학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작가 브엉은 알려진 동성애자다. 주인공 나도 게이다. 나의 연인이었던 ‘트레버’는 마약성 진통제 중독에 걸려 결국 과다복용으로 죽고 만다. 마약성 진통제의 원흉은 옥시콘틴이다. 말기 암환자나 만성통증환자의 통증 치료제로 개발된 이 약의 남용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2020년, 미국에서는 6만 8천여 명이 오피오이드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진실을 담은 이야기지만 그 진실이 불편했다. 브엉은 시인이다. 그래서 그런지 책의 흐름이나 서술이 시 같아 쉽게 잘 읽히지 않는다. 영어로 된 긴 시를 읽는 것은 영어가 외국어인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저기 서평에서 꼭 잃어야 할 책으로 추천하기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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