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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나라 없는 사람

by 동쪽구름 2022. 1. 18.

헌책을 사다 보면 가끔 재미있는 일이 생긴다. 누군가 책장에 남겨 놓은 노트를 보게 되고, 책갈피에 꽂아놓은 카드나 쪽지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신문 스크랩을 발견했다. 누군가 '나라 없는 사람'을 인용한 김선주 칼럼 오린 것을 세 번 접어 책 표지 안쪽에 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뗄까 하다가 그냥 남겨두었다.

 

‘나라 없는 사람’(A Man Without a Country)은 작가 ‘커트 보네거트’가 ‘인디스 타임스’(In These Times)라는 잡지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그의 마지막 작품집이다. 일단 그의 책은 재미있다.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와 입담을 만끽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그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미국의 정치인들 특히 공화당과 부시 일당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또한 그는 환경을 파괴하는 산업과 대기업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라크가 대량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어 미국뿐 아니라 자유우방의 위협이라고 주장하며 이라크를 침공했던 부시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미국은 월남전 그리고 그 후 지속된 소련과의 군비경쟁을 하며 호황을 누렸다. 죽창으로 대항하는 베트콩들에게 새로 개발한 폭탄과 신무기를 대량으로 소비하며 무기와 군수물자를 만드는 재벌기업들에게 세금을 마주 퍼 주었다. 물론 많은 돈을 벌어들인 대기업들은 이들에게 막대한 정치자금으로 보상을 해 주었을 것이다.

 

월남전은 끝났고, 소련이 붕괴되며 탈냉전시대가 오자 사용하지 못한 군수물자와 폭탄이 쌓여갔다. 창고를 비워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미국은 아무것도 없는 중동 사막에 막대한 양의 재고 폭탄을 투하했다. 물론 창고가 비었으니, 다시 채워 넣었을 것이다.

 

부실 대출로 부동산 시장이 붕괴되고 은행들이 큰 소실을 입자, 정부가 나서서 이들을 모두 구제해 주었다. 부실 대출을 한 은행에는 돈을 빌려주고, 무리한 대출로 돈을 빌려 호화판 여행을 하고 형편에 맞지 않는 과소비를 했던 몰지각한 소비자에게는 은행빚을 대신 갚아주는 선심을 썼다. 열심히 일하며, 제때 융자금을 갚고, 성실히 세금을 냈던 나를 비롯한 많은 선량한 서민들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것이다. 정부가 퍼준 돈은 우리가 낸 세금이었다.

 

4년 또는 5년마다 선거를 하는 민주주의도 문제다. 정치인들은 결코 국민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거에서 이기려 하고, 당선이 되고 나면 다음번 선거를 준비한다. 그들은 결코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국민의 선심과 표를 살 수 있는가만 생각할 뿐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국가부채가 심각하다. 노령인구는 늘어나고 다음 세대 인구는 줄어드는 판에 빚을 내서라도 선심공세를 펴는 것은 누구를 위한 일인가. 국민? 천만에. 자신의 재선, 자기가 속한 정당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포석일 뿐이다. 

 

2021년, 미국 정부는 2번에 걸쳐 경기부양금을 지급했다. 그건 연방정부가 지급한 돈이다. 3차, 4차 경기부양금을 지급한 지방정부도 많다. 세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집세를 보조해 주고, 실업자들에게는 실업수당 외에 특별수당을 지급했다.

 

정부가 돈을 찍어내고 빚을 내서 지급한 돈이다. 과연 그 돈은 팬데믹으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돌아갔을까? 아니다. 팬데믹 이후 형편이 더 좋아진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공돈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회사가 다시 문을 열어도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시중에 돈이 흔하니 인플레이션이 왔다. 한번 오른 물가는 쉽게 다시 내려가지 않는다. 

 

아무도 국민에게 힘든 소리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돈을 찍어내고, 빚을 더 지더라도 선심은 계속돼야 한다. 왜? 선거가 다가왔으니까.

 

그럼 무엇이 답인가? 나도 모른다. 나는 정치인도 아니고 사학자도 아니다. 가끔 이렇게 말이 될 듯 안될듯한 투정을 해대는 불평 많은 서민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우리는 모두 죽게 된다는 사실이다. 사람만 죽는 것이 아니다. 기업도 죽고, 나라도 죽고, 문명도 죽는다.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로마도 망했고, 해가 지지 않는다던 영국도 이제는 작은 섬나라에 불과하다. 

 

언젠가 우리가 알고 있는 이런 식의 민주주의도 죽게 될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나는 그 끝을 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사실이다.

 

(커트 보네거트 흉내를 좀 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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