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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by 동쪽구름 2022. 1. 29.

김영하의 작품에서는 영어권 소설을 한글로 번역한 느낌을 받곤 한다. 기발한 소재, 톡톡 튀는 플롯이 재미를 더 한다. 큰 기대하지 않고 집어 들었던 작품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역시 그런 맥락에서 재미있었다.

 

로봇 - 여행사 여직원 김수경이 자칭 로봇이라는 남자와 잠시 나누는 사랑이야기다. 섹스 로봇이 곧 대중화될 조짐이 보이는 요즘, 재미있는 소재다. 

 

여행 - 결혼을 앞둔 수진은 전에 사귀던 애인에게 반 강제로 납치되어 곤욕을 치른다. 여자들은 결혼을 앞두면 다소 흔들리는 모양이다. 곧 남의 여자가 될 애인을 한 번 더 안아본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악어 - 변성기를 맞으며 아름다운 목소리를 얻어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부르던 남자가 어느 날 홀연히 그 음성을 잃게 된다. 

 

밀회 - 7년 동안 독일에서 유부녀인 옛 여인을 만나던 남자가 마지막 만남에서 죽음을 선택한다. 분위기는 좀 다르지만, '내년, 같은 시간'(Same Time, Next Year)이라는 오래된 영화가 생각난다. 영화에서는 가정이 있는 두 남녀가 5번에 걸쳐 만나 밀회를 즐긴다. 

 

명예살인 - 피부과의 여직원이 뾰루지 발생 후 자살한다는 2페이지 분량의 작품이다. 

 

마코토 - 마코토라는 일본 유학생을 두고 벌어지는 사랑이야기다. 남자들 앞에서 내숭을 떠는 현주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여자들의 눈에는 다른 여자의 내숭이 보이는 모양인데, 남자들은 내숭과 매력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아이스크림 - 평소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에서 석유냄새를 발견한 동규와 혜선이 이를 신고하자, 본사에서는 김성룡 부장을 보낸다.

 

조 - 소매치기 담당 경찰이 권력을 이용해 좀도둑 여성에게 성추행까지 저지르지만, 결국 자신도 좀도둑으로 체포되어 구치소로 간다. 

 

퀴즈쇼 - 퀴즈쇼에 나갔던 동국이 결승전에서 초등학교 동창인 은이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연쇄살인범에게 가족을 모두 잃고 삼촌의 손에 자란다. 어른이 된 후, 부모가 남겨준 막대한 재산을 상속하고 무위도식하며 지낸다. 난 비슷한 비극을 겪은 한 가정을 알고 있다. 40년 전, 번역실에서 일할 때 알던 전 부장에게 벌어진 일이다. 집에 대낮에 강도가 들어 어린 세 자녀가 모두 피살되었다. 그 후, 그는 다시 세 자녀를 더 낳았다. 

 

오늘의 커피- 커피집에서 우연히 과거 방배동의 갈빗집에서 싸웠던 사람을 마주한 남자는 커피집을 나오며 그에게 주먹을 날려 그날의 복수를 한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살아온 세월만큼 감정의 앙금도 쌓여간다. 다 용서하고 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우연한 기회에 이렇게 복수를 할 수 있다면, 십 년 묵은 체증도 다 사라지겠지.

 

약속 - 터미널에서 버스 기다리던 남자가 3만 원을 빌려달라는 여자에게 핸드폰 사진을 한 장 찍은 후 돈을 빌려 준다. 과연 그 돈을 돌려받았을까. 

 

살다 보면 왜 이런 일이 벌어져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이 생겨나곤 한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내 인생의 방향은 살짝 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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