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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9

나라 없는 사람 헌책을 사다 보면 가끔 재미있는 일이 생긴다. 누군가 책장에 남겨 놓은 노트를 보게 되고, 책갈피에 꽂아놓은 카드나 쪽지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신문 스크랩을 발견했다. 누군가 '나라 없는 사람'을 인용한 김선주 칼럼 오린 것을 세 번 접어 책 표지 안쪽에 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뗄까 하다가 그냥 남겨두었다. ‘나라 없는 사람’(A Man Without a Country)은 작가 ‘커트 보네거트’가 ‘인디스 타임스’(In These Times)라는 잡지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그의 마지막 작품집이다. 일단 그의 책은 재미있다.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와 입담을 만끽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그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미국의 정치인들 특히 공화당과 부시 일당을 신.. 2022. 1. 18.
폭동인가, 혁명인가 2021년 1월 6일 워싱턴의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벌어진 폭동이 정치테러인지 시민혁명의 시작인지는 시간이 흐른 후 역사가 밝혀 줄 것이다. 그동안 미국의 대도시에서 발생했던 폭동이 방화와 약탈로 이어졌던 것에 반해 이번 사태는 의사당을 점거하며 나름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점에서 단순 폭동은 아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의 기류로는 이번 사태는 돌발행동의 달인 트럼프가 부추긴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일회성 소동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그를 지지하고 따르던 다수의 정치인들과 보좌진이 등을 돌리고 있고, 민주당과 공화당 일부는 이번 기회에 아예 트럼프의 정치 생명을 끝내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단순히 선거 결과에 대한 트럼프의 불만에서 시작된 일은 아니다. 그보다 훨씬 뿌.. 2021. 1. 12.
슬픈 외국어 한 달에 한번 정도 알라딘 중고서적 사이트에 들어가 책을 산다. DHL 항공편으로 오기 때문에 주문하면 3-4일 내로 도착한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책을 고르다가 하루키의 책이 나오면 무조건 산다. 하루키니까 믿고 산다고 해야 할까. 얼마 전에는 ‘슬픈 외국어’라는 에세이집을 샀다. 유럽에 살며 쓴 글을 모아 낸 책이 ‘먼 북소리’였고, 그 후 일본에 돌아가 1년 정도 살다가, 미국에 와서 3-4년 살며 쓴 글을 모은 책이다. 잡지에 연재했던 글을 정리하고, 더 하고 싶은 이야기는 ‘뒷이야기’라고 해서 각 꼭지 끝에 달아 놓았다. 한국에는 1996년에 초판이 나온 후, 내가 산 책은 2010년에 나온 29쇄다. 그 후 얼마나 더 팔렸는지는 모르지만 과연 하루키의 인기를 짐작케 한다. 유럽에 머물며 공전.. 2020. 11. 10.
나의 살던 고향은 이제 한국에서 산 세월보다 미국에 와서 보낸 시간이 10년이나 더 길다. 누군가는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노래했지만, 나는 아직도 미국이 고향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게는 남들에게 자랑하고 내세울만한 고향은 없다. 아버지는 실향민이었고, 외가는 손바닥만 한 집이라도 사대문 안에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서울 중인이다. 남들은 명절이 다가오면 서울역과 고속버스 터미널에 자리를 펴고 차표를 구하던 시절에도 우리는 명절을 집에서 보냈다. 사전에 보면 고향이란 “자기가 태어나 자란 곳. 또는, 자기 조상이 오래 누리어 살던 곳”이라고 한다. 그렇게 따지면 나의 고향은 외가가 있던 관훈동이고, 아버지가 사업을 접고 양계를 시작했던 구파발이며, 미국 오기 전까지 갈빗집을 하며 살았던 벽제다. 외가.. 2020. 10.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