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10 나의 살던 고향은 이제 한국에서 산 세월보다 미국에 와서 보낸 시간이 10년이나 더 길다. 누군가는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노래했지만, 나는 아직도 미국이 고향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게는 남들에게 자랑하고 내세울만한 고향은 없다. 아버지는 실향민이었고, 외가는 손바닥만 한 집이라도 사대문 안에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서울 중인이다. 남들은 명절이 다가오면 서울역과 고속버스 터미널에 자리를 펴고 차표를 구하던 시절에도 우리는 명절을 집에서 보냈다. 사전에 보면 고향이란 “자기가 태어나 자란 곳. 또는, 자기 조상이 오래 누리어 살던 곳”이라고 한다. 그렇게 따지면 나의 고향은 외가가 있던 관훈동이고, 아버지가 사업을 접고 양계를 시작했던 구파발이며, 미국 오기 전까지 갈빗집을 하며 살았던 벽제다. 외가.. 2020. 10. 16. 짜장면과 짬뽕, 그리고 햄버거 요즘은 먹거리가 다양해졌지만 70년대 초 가벼운 주머니의 우리들이 사 먹을 수 있었던 메뉴는 짜장면과 짬뽕 정도였다. 여럿이 중국집에 가면 일행 중 누군가 “짜장면 먹을 사람,” 또는 “짬뽕 먹을 사람” 하고 손을 들게 해 주문을 했다. 메뉴판 따위는 볼 필요도 없었다. 이때 누군가 눈치 없이 물만두나 볶음밥을 먹겠다고 했다가는 심한 눈총을 받았다. 본인의 기호에 맞게 “내 짬뽕에는 양파를 넣지 마세요” 또는 “짜장에서 돼지비계는 빼 주세요” 등의 주문은 허용되지 않았다. 똑 같이 나온 짜장면에 맛을 더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춧가루나 식초를 넣어 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가끔 직장동료들과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가게 된다. 7-8명이 가면 그중 같은 메뉴를 주문하는 사람은 한, 두 명 정도다.. 2020. 7. 10.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