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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6

내 옆에 있는 사람 이병률 시인의 여행 산문집 ‘내 옆에 있는 사람’에는 페이지 숫자가 없고, 목차도 없다. 세어보기 전에는 몇 쪽인지, 몇 편의 산문이 실려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책의 두께를 자로 재어 보았다. 24 mm 다. 코로나가 시작된 후 수염을 기르고 있다. 처음에는 3 mm 길이로 다듬었는데, 너무 길다 싶어 요즘은 1 mm 클립을 끼워 다듬는다. 2 mm 가 마음에 드는 길인데, 내가 산 면도기에는 2 mm 클립은 없다. 이틀쯤 수염을 깎지 않으면 1 mm 쯤 자란다. 24 mm의 두께는 내가 48일 동안 자르지 않은 수염의 길이와 같다. 나는 이 책을 아껴가며 매일 조금씩 한 달쯤 읽었다. 어떤 글은 내 이야기 같기도 하고, 어디서 들은 이야기 같기도 하며, 어떤 것은 그가 지어낸 이야기지 싶은 글도.. 2020. 8. 25.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자라면서 부모님으로부터 “사랑한다” 는 말을 들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유독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70/80 세대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을 것이다. 연인들 사이에도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담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이다. 쑥스러워 말로는 하지 못하고 편지로 써서 주저하며 건네곤 했었다. 외국 영화를 보면 서양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사랑한다고 말하곤 했다. 나중에 영어를 배우며 미국인들이 사용하는 “love”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때까지 내가 알고 지내던 “사랑”이라는 단어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인들은 많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나 “사랑”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사과나 바나나를 사랑하고, 야구와 미식축구를 사랑하며, 뜨거운 여름 햇살을 사랑한다. 요즘은 한국인들도 미국 사람.. 2020. 6. 29.
5년 일기 얼마 전의 일이다. 내가 즐겨 듣는 팟캐스트에 초대 손님으로 나온 어떤 작가가 오래전부터 5년 일기를 쓰고 있다고 했다. 5년 일기라니? 일기장 한 페이지를 5 등분해서 쓰는 일기란다. 작년 이맘때부터 5년 일기를 시작했다면, 오늘 일기를 쓰기 위해 노트를 열면 상단에는 작년 오늘의 기록이 나오고, 나는 그 밑에 오늘의 일기를 적게 된다. 그녀는 매일 일기를 쓰며 지난날을 돌아보기도 하고, 그 기록을 정리하여 책을 쓰기도 한다고 했다. 여태 그런 일기장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아왔다. 아마존에 찾아보니, 정말 그런 일기장들이 있다. 아예 한 줄 일기로 10년짜리도 있다. 5년 치 일기장으로 주문을 해서 쓰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물건을 정리하다가 수첩을 몇 개 발견했다.. 2020. 6. 28.
어머니의 앨범 동생이 어머니 짐을 정리해서 앨범을 가져왔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군인이었기 때문에 수도 없이 이사를 다녔고, 전역 후에는 집을 수리해서 파는 집장사를 하느라고 이사를 다녔고, 벽제에서는 안채를 영업장소로 내놓고 뒷채로 이사를 했고, 미국에 이민 와서도 LA에서 밸리로 밸리에서 벤추라로, 그리고 다시 밸리로… 참 많이도 이사를 다녔던 앨범이 마침내 우리 집에 왔다. 달랑 원베드룸 노인 아파트에 새로 가구를 들여놓느라고 짐을 추리다 보니 마땅히 보관할 장소가 없어 부모님 살아생전에 정리를 하자고 동생이 들고 온 것이다. 60년도 넘은 사진들이 나온다. 어머니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버지 군 시절의 사진들… 미군 고문관을 초대해 호랑이 족자를 선물로 주는 사진, 아버지가 미국 출장 와서 미군들과 찍었던 사.. 2020. 6.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