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에 걸렸다. 증상보다는 감기에 걸렸다는 사실에 놀라고 당황스럽다. 코로나 팬데믹 후 지난 5년 동안 감기를 걸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싶어 집에 있던 검사 키트로 (날짜가 지나긴 했지만) 검사를 했다. 다행히 음성이다. 이틀 정도 감기약을 먹었더니 애플워치 앱에 심장이 빨리 뛰는 것으로 나온다. 나는 평소 심박수가 빨라 이를 조절하기 위해 베타 차단제 아테놀롤을 복용하고 있다. AI에게 (요즘은 웬만한 것은 이 친구에 묻는다) 물어보니 감기약 때문이라고 한다. 약 먹기를 중단했다. 감기 증상은 심하지 않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긴 한데, 나이 탓인가 회복속도는 더디다.
컨디션은 성당에 나가도 될 듯싶었지만 오늘은 추석을 맞아 미사 후에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는다. 노인이 많은 우리 성당인데 혹시나 남들에게 피해를 줄까 싶어 가지 않았다. 아내가 제대 앞에 차려 놓은 추석상 사진을 보내왔다. 성당에서는 일 년에 두 번, 설과 추석에 조상을 위한 분향을 한다. 금년 추석에는 상을 차리기로 해, 성모회장이 된 아내가 임원들과 상차림을 했다. 사진을 가족톡방에 올려 형제들에게 보내주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운명처럼 생각될 때가 있다. 부모님이 가톨릭 신자가 되신 일부터가 우연 같은 운명의 시작이었지 싶다.
종교라곤 가져 본 적이 없던 아버지가 은퇴 후 벤추라 노인아파트로 이사하신 후, 두 분이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나도 그랬지만 자식 중 누구도 부모님이 신자가 되신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세례식에 가지 않은 것은 물론, 1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성당 미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매주 미사는 물론 주중에는 성당의 노인대학에 나가셨고, 피정이나 야유회 등 성당행사에는 적극 참여하셨던 모양이다.
유아세례를 받은 신자인 아내를 따라 (50대) 늦은 나이에 성당에 나가 신자가 되며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우연 같은 운명을 마주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건강이 급속히 나빠져 두 분이 멀리 떨어져 사시는 것이 힘들어지자 다시 밸리의 노인아파트로 이사를 나오게 되었고, 어머니 먼저, 뒤따라 아버지도 우리 집 근처 요양병원에 들어가셨다. 11년 전 같은 해, 아버지는 6월에, 어머니는 10월에 (내 환갑 바로 다음 날) 돌아가셨다.
두 분의 장례를 모두 장례미사로 마칠 수 있었다. 아내의 배려로 2년에 걸쳐 제사도 지냈다. 제사 때마다 형제자매를 불렀는데, 마지못해 오는 사람도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모여서 함께 음식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고 남은 음식을 나누어 먹기를 바랐는데, 다들 내 마음 같지 않았다. 나 어렸을 때, 이모는 작은 집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다음날 음식을 한 보따리 싸들고 돌아오곤 했다. 3년상을 마치며 앞으로는 연미사로 대신하겠다고 제사를 끝냈다.
오늘 우연이라고 넘긴 일이 언제 운명이 되어 나의 삶을 바꾸게 될지 알 수 없다. 감기가 나으면 부모님 산소에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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