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9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보’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기력이 나날이 떨어져 가는 것을 느낀다.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지만 여전히 고집스러운 마음으로 살고 있다. 치매에 걸려 요양시설에 살고 있는 아내는 그가 아들과 방문을 해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혼자 집에 남은 그는 아내가 쓰던 스카프를 병 속에 넣어두고 그리울 때면 꺼내어 그녀의 향기를 맡는다. 이제 그 병의 뚜껑을 여는 일도 쉽지 않다. 매일 요양보호사들에 집으로 와 그의 식사를 챙기고 목욕을 시켜준다. 요양보호사들은 그에게 기저귀를 권하지만 그는 이를 거부하며 자주 실례를 한다. 오랜 친구 ‘투레’와 반려견 ‘식스텐’이 유일한 기쁨이다. 다른 도시에 살며 역시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살고 있는 투레와는 자주 전화를 한다. 아들 ‘한스’가 있지만 좋은 관.. 2025. 11. 7. 노인력 저자 ‘아카세가와 겐페이’는 전위 예술가, 작가, 그리고 초예술 토마손과 (일본에 진출한 미국 야구 선수 게리 토머슨을 보고 만든 용어. 기능적인 역할이 없지만 예술적으로 보이는 건축물의 구조를 칭한다.) 노상관찰학의 제창자였다. 90년대 발표한 글들을 모은 것이니, 25년이나 지났다. 이 책을 썼던 무렵, 그의 나이는 60대 초반. 요즘은 60대를 노인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60대가 되면 노인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모양이다. 여기서 말하는 노인력은 노인들이 나이가 들며 겪게 되는 일들을 노쇠현상이 아닌 노인에게 생기는 능력으로 본다는 의미다. 디지털 문화가 젊은이들의 것이라면, 아날로그 적인 것은 노인력에 속한다. 책으로 들어가서,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4년 정도 지났을 무렵, 중학생 .. 2025. 8. 17. 너 늙어봤냐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건 요즘 내가 즐겨 듣는 서유석의 노래 제목이다. 겪어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말라는 의미다. 젊은 사람들 눈에는 나이 든 사람에게는 새로운 것이 없을 듯싶겠지만, 살아보면 이 나이에도 새로 경험하고 깨닫는 것들이 있다. 난 어려서부터 냉수만 마셨다. 할머니가 누룽지를 끓여 구수하게 만든 숭늉을 드시며 “시원하다”하는 것이 도무지 생소하고 낯설었다. 받아 놓은 물은 차갑지가 않아, 추운 겨울에도 마당의 수도에서 갓 받는 얼음 같은 냉수만 마셨다. 우리 집 정수기에서는 온수, 냉수, 상온, 이렇게 세 가지 온도의 물이 나온다. 어느 날부터 냉수 대신 상온의 물을 마시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게다가 누룽지를 끓인 물이 구수하니 맛있어졌다. 점심을 잘 먹은 날은 끓.. 2025. 5. 15. 아저씨의 칠순 잔치 동갑내기 아저씨의 칠순 잔치에 다녀왔다. 칠순 나이를 어떻게 계산하는가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는데, 환갑은 만 나이 60세에 하는 것이고, 칠순이나 팔순은 한국식 나이 70과 80이라고 한다. 만 나이 통일법이 시행되며 칠순을 만 나이로 따지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내가 기억하는 큰 잔치는 외할아버지와 어머니의 환갑잔치다. 외할아버지 때는 이틀 전부터 전을 부치고 음식을 장만해 크게 상을 차려 잔을 올렸다. 자식들이 잔을 올릴 때 중년의 여인이 곁에서 소리를 했고, 하루 종일 손님들이 오갔다. 어머니의 환갑잔치는 타운의 중식당에서 했는데, 꽤 많은 손님이 왔었다. 그때도 상을 차려 잔을 올렸는데, 할아버지 때와는 달리 상에 오른 한과가 장식용이었다. 나와 형제들이 어머님 은혜와 생일 축하 노래를 .. 2025. 1. 16.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