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책은 작가의 성별이나 나이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선택하는 편이지만 에세이는 조금 다르다. 에세이에는 작가의 삶과 평소 생각이 녹아있어 아무래도 동시대 사람의 글에 더 공감이 가고 애착이 간다. 내게는 딸 같은 나이의 작가 김애란의 산문집 “그랬다고 적었다”도 몇 번이고 집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AI에게 물어 노인이 읽기에도 매력적이고 편안하게 다가올 책이라는 추천의 말을 듣고서야 구입했다.
책은 1부 사람의 얼굴, 2부 이야기 얼굴, 3부 일상의 얼굴로 되어 있다. 인지장애 진단을 받고 종합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그리고 마침내는 요양원으로 옮겨간 아버지와 아버지를 돌보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이루어진 1부가 가장 좋았다.
평생을 이발사로 살아온 아버지의 이발소를 정리하는 장면에서 나는 부모님이 양로병원에 입원하신 후 동생들과 부모님의 아파트를 정리하던 때를 기억했다. 어머니는 온갖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끼고 살았다. 쓸 사람도 없고 누구에게 줄 수도 없는 물건들을 우리는 어머니의 허락도 없이 쓰레기봉투에 마구 쓸어 담아내다 버렸다. 일부 물건들은 박스에 담아 우리 집 차고에 가져다 놓았지만, 결국 아내의 손에 정리되어 대부분 구세군에 도네이션 하고 말았다.
작가 김애란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녹음 인터뷰했다. 내가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내가 기억하는 부모님의 삶은 조각보와 같다. 같은 이야기라도 어떤 기분으로 누구에게 하는가에 따라 내용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내가 기억하는 그분들의 과거는 부정확하거나 과장된 것일 수도 있다.
작가가 부모님에게 가장 오래된 기억은 어떤 것인지를 묻는 대목에서 나는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을 떠올렸다. 겨울날이었다. 길에는 눈이 쌓여 있었고, 그날 이모, 삼촌과 함께 극장에 가는 길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외국 출장길에 사 온 코트를 입었고, 삼촌의 팔에 안겨 있다가 삼촌이 눈길에 넘어지며 함께 넘어졌다.
2부에는 문학과 관련된 글이 있고, 3부에는 작가가 참여했던 이런저런 사회활동에 대한 글이 들어 있다. 1부 부모님에 대한 글은 최근에 쓴 글이며 전체적인 흐름이 같다. 2부와 3부의 글들은 이런저런 지면에 발표했던 글, 모임에 나가했던 축사나 인사말 등이며 조금 시간이 지난 글들이다.
3부에 실린 세월호 관련 글을 읽으며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이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언제부턴가 한국에서는 큰 사고가 생기면 희생자 가족들이 단체를 만들고 세를 불려 자신들이 관련된 사고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 문제에도 이런저런 의견을 내고 영향력을 행사한다. 합창단을 만들어 행사장에 등장해 노래를 하고 연극을 한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당한 보상이나 대우를 받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형사고나 대량해고 등은 피해자의 수는 많지만 한번 일어난 일이다.
한국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장애인들이 (한 번에 한두 명씩) 부당한 대우를 받고 산다. 소비자임에도 미장원이나 식당에서 천대받는다. 내가 한국을 떠나던 45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들을 위해 합창단을 만들고 연극을 해 주는 시민단체는 없다. 세월호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입맛이 쓰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서, 김애란의 산문집 “그랬다고 적었다”는 국민연금을 받는 나이, 또는 그런 나이의 부모를 둔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시간이 없다면 1부에 실린 글만 읽어도 충분하다.
이 책은 교보문고에서 이-북으로 구매했다. 지난여름부터 알라딘 책방에 접속이 되지 않는다.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았는데 되지 않아 AI에게 물어보니 IP 차단을 한 것 같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이-북은 구입즉시 볼 수 있고, 가격면에서 저렴하지만, 책을 소장하는 즐거움은 없고, 누군가에게 빌려 줄 수도 없다는 단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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