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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by 동쪽구름 2026. 8. 15.

하루키는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를 발표하고 10년쯤 지났을 무렵, 다시 잡지 ‘앙앙 anan’에 ‘무라카미 라디오’라는 표제를 달고 에세이를 연재했다. 그리고 그 글들을 ‘오하이 아유미’의 동판화와 함께 연재순으로 엮어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를 출간했다. 

 

몇 가지 첫 번째 책과 다른 점을 발견했다. 글의 맛이 조금 더 깊어졌다고 해야 할까? 하여튼 나는 그렇게 느꼈다. 아유미의 그림은 정말 많이 달라졌다. 1편에 실렸던 판화에 비해 이번 책에 실린 그림들은 선이 매우 깔끔하고(테그닉이 늘었나?), 세련되어 보인다. 그리고 역시나 하루키적 발상인지 (어쩌면 편집자의 아이디어였을지도 모르겠다) 글 끝에는 에세이의 내용과는 별 상관도 없는 문장이 하나씩 적혀있다. 

 

“지바 현에서 ‘굿럭’이라는 이름의 러브호텔을 보았습니다. 애쓰십시오.”

“구급차 타본 적 있나요? 나는 네 번 있습니다. 미국에서 탔더니 요금을 꽤 받더군요.”

"화이트데이에 한 번도 답례한 적이 없는데 혹시 천벌 같은 거 받으려나?”

"태어나서 아직 한 번도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없습니다. 뭐, 괜찮습니다."

 

“나는 수동기어 차량을 잘 모는 사람이 참 매력적으로 보인다… 엔진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페달 감각을 느끼며 기어를 변속하면서… 달리는 것보다 더한 기쁨이 있을까.” 큰아이가 대학 3학년 때 처음으로 차를 사게 되었는데 굳이 수동기어가 달리는 차를 사겠다고 해, VW Jetta 수동을 사 주었다. 그 후, 지금까지 계속 자동을 사는 걸 보면 수동기어가 운전하기에 편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내가 해보고 싶지만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것이 수동기어 운전이다. 남들은 두 다리, 두 팔, 사지로 운전을 하지만, 나는 달랑 두 팔로 운전을 해야 한다. 클러치를 밟을 다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로마 시에 감사해야 해)

 

“에세이 쓰기는 어렵다… 에세이를 쓸 때의 원칙, 방침 같은 건 있다. 첫째, 남의 악담을 구체적으로 쓰지 않기. 둘째, 변명과 자랑을 되도록 쓰지 않기. 섯째, 시사적인 화제를 피하기…이런 조건을 지키며 에세이를 연재하려고 하니 ‘쓸데없는 이야기’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나 역시 글을 쓸 때 이런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여기에 몇 가지 더 하자면, 넷째, 독자에게 어떻게 하라고 권하지 않으며, 다섯째, 재미있어야 한다. (에세이는 어려워)

 

하루키는 요즘 좌우로 모양이 다른 양말을 자주 신는다고 한다. 신발 모양이 좌우 다르게 정착된 것은 지난 2-300년 사이의 일이다. 그는 양말을 신을 때는 왼쪽부터, 신발은 오른쪽, 바지는 오른쪽부터 다리를 넣는다. 반대로 하면 상당히 어색하다. 나는 바지는 왼쪽부터, 양말이나 신발은 정해진 것이 없는 것 같다. 칫솔질과 면도는 왼쪽부터 한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내가 대학생 때 ‘서른 넘은 놈들을 신용하지 마라’라는 말을 흔히 들었다. 어른을 믿지 마라 하는 의미다… 우리는 서른을 넘었고, 대부분 옛날의 그 지루하고 멍청한 어른이 되었다…서른 살이 넘어 달라진 거라면 소설가가 되어 생활을 일신한 것이다.” 나는 서른에 무엇을 했나? 그 무렵 방영되었던 ‘Thirtysomething’이라는 드라마를 열심히 보았던 기억이 난다. 스토리는 기억도 나지 않는 별로 재미없는 드라마였는데, 끝나가는 나의 30대가 아쉬워 그랬지 싶다. (서른 살이 넘은 녀석들)

 

보스턴의 펜웨이파크 3루 측 뒷자리에서 레스삭스 대 양키스의 시합을 보며 하루키는 시작부터 끝까지 3루수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수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공 하나마다 미묘하게 위치를 이동하여 자세를 가다듬는 그의 움직임이 아름다울 만치 훌륭했다고 한다. 야구팬인 나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 역시나 야구는 아름다운 운동이다. (마치 표범처럼) 

 

“나는 제법 나이를 먹었지만, 나 자신을 절대 ‘아저씨’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니, 실제로는 분명 아저씨랄까, 영감이랄까, 틀림없이 그쯤 됐지만 스스로는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뭐 아저씨니까’ 하고 말하는 시점부터 진짜 아저씨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이제 아저씨를 지나 영감이 분명하다. 70이 된 내가 자칭 ‘영감’인데, 하루키는 나보다 나이가 많다. 그럼에도 “내게는 ‘딱 좋다’가 인생에서 하나의 키워드가 되었다…’이 정도면 그냥 딱 좋지 않은가’ 하고 생각한다.” 그렇다, 하루키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지금이 딱 좋다. (딱 좋다) 

 

 

책에 실린 동판화

 

책에 실린 동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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