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1980년대 후반 헝가리, 어머니를 따라 새 동네로 이사한 15세 소년 ‘이슈트반’은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어머니의 부탁으로 42세 이웃 유부녀의 장보기를 도와주던 그는 그녀와 비밀스러운 성적관계를 맺게 된다. 두 사람의 관계를 눈치챈 남편과 계단에서 몸싸움을 벌이다 남편이 계단 아래로 굴러 사망하게 되고, 그는 소년원에 수감된다.
출소 후, 갈 곳이 없던 이슈트반은 군에 입대해 이라크 전쟁에 파병되어 전쟁의 참혹함을 목격한다. 그가 유일하게 마음을 열었던 전우 ‘리키’가 폭발물 사고로 처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목격한 후 내적 외상을 입게 된다. 제대 후 고향으로 돌아와 와이너리 창고에서 일을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삶을 산다.
더 나은 삶을 찾아 영국 런던으로 이주한 그는 스트립 클럽의 경비원(바운서)으로 일하며 밑바닥 생활을 이어가다 우연한 사건으로 인생 역적의 기회를 맞는다.
어느 날 밤, 노상강도를 만난 부유한 노신사 ‘머빈’을 구해 주는데, 그 보답으로 머빈은 그를 자신의 보안업체에 고용한다. 그리고 이슈트반은 상류층 부부 ‘칼’과 그의 나이 어린 아내 ‘헬렌’의 전담 보안 운전기사가 된다.
남편인 칼이 자주 집을 비우는 사이, 이슈트반은 헬렌과 내밀한 관계를 맺게 된다. 칼이 병으로 사망하게 되며, 그는 가난한 이민자에서 부유한 부동산 개발업자로 신분상승을 이루게 된다.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았는지 칼은 전 재산을 아들에게 남기며, 아들이 25세가 될 때까지만 재산의 관리를 아내인 헬렌에게 맡겨 놓았다.
헬렌과의 결혼으로 막대한 부를 누리지만, 그의 내면은 여전히 공허하다. 칼의 아들인 ‘토마스’는 그를 의심하며 경멸한다. 비극적인 사고로 헬렌은 식물인간이 된다. 25세가 된 토마스는 칼의 유언에 따라 모든 재산을 물려받게 되자, 이슈트반이 누리던 부를 모두 거두어들인다. 이슈트반은 다시 헝가리 어머니의 낡은 아파트로 돌아간다.
2025년 3월에 출간되어 그해 부커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슬레이’의 소설 ‘플래시’(Flesh)는 한 남자의 50년에 걸친 삶을 매우 건조한 문체로 그려낸 작품이다. 책 속의 대화는 매우 짧고 단순하며 장황한 서술도 없다. 어떤 사건도 길게 묘사하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다음 장이 며칠, 또는 몇 달 후로 이어지면 독자는 그 사건의 결말을 짐작할 수 있다.
주인공 이슈트반은 스스로 삶을 주도하기보다는 타인의 제안이나 우연한 사건에 휩쓸려 다니는 수동적 인물로 그려진다. 작가는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이 여정이 결국은 육체가 경험하는 우연의 연속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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