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만에 벌어진 뉴욕 양키스와 LA 다저스의 월드시리즈는 5차전에서 0-5로 뒤지고 있던 다저스가 7-6으로 역전승하며 시리즈 전적 4대 1로 월드시리즈 8번째 우승을 이루었다.
시리즈전적 4대 1이면 다저스의 일방적인 승리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번 시리즈는 매우 팽팽한 대결이었으며, 만약 뉴욕이 5점 차 리드를 잘 지켜 5차전을 승리했더라면 4연승으로 우승도 할 수 있는 상황으로 갈 뻔했었다.
2024년 월드시리즈 드라마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1차전, 연장 10회 초 , 양키스가 득점하며 3대 2로 앞서 갔다. 10회 말 다저스 공격, 1사 1,2루에서 기대했던 오타니가 친 파울볼을 양키스의 버두고가 관중석으로 몸을 날리며 잡아내 승기를 잡은 듯했다. 파울 플라이 아웃 때, 1,2루의 주자는 2,3루로 진출한 상황. 다음 타자는 베츠. 양키스의 감독 분은 고의 사구를 선택, 베츠를 1루에 보내고 프레디 프리먼과의 대결을 선택했다. 물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작전이었다. 과거 플레이오프에서의 부진을 떨구고 방망이가 살아난 베츠보다는 발목부상으로 스윙감각이 떨어지는 프리먼을 택한 것이다. 게다가 마운드에는 좌완투수가 나와 있었다. 하지만 프리먼은 초구를 노려 쳐 월드 시리즈 역사상 첫 끝내기 만루홈런을 치며 다저스의 6대 3 역전승을 이루어 냈다.
2차전은 다저스의 선발 야마모토의 호투와 홈런 세 방으로 다저스의 4대 2승.
뉴욕으로 자리를 옮긴 3차전, 워커 뷸러의 5이닝 무실점 호투와 프리먼의 3게임 연속 홈런으로 다시 다저스의 4대 2 승. 사람들의 관심사는 이제 다저스가 싹쓸이 우승을 할 것인지에 쏠렸다. 하지만 부상으로 선발투수가 부족한 다저스. 로버츠 감독은 4차전을 불펜에게 맡겼다.
다저스는 프리먼의 4게임 연속 홈런에 힘입어 2대 0으로 산뜻하게 출발했으나, 믿었던 구원투구 허드슨이 양키스의 볼피에게 만루홈런을 맞으며 5대 2로 역전되었다. 로버츠 감독은 지고 있는 게임에 투수 자원을 소진하며 쫓아가기보다 4차전을 포기하고 정예 구원투수진을 아껴 다음 5,6,7차전에 대비하기로 마음먹는다. 양키스의 11대 4 승.
시리즈에서 부진하던 저지가 적시타를 치고, 타자들의 방망이가 살아난 양키스는 한게임씩 따라가면 4연승도 가능하다는 의지를 보이기 시작했고, 뉴욕 언론들도 거들어 팬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그리고 맞은 5차전, 다저스 선발 잭 플래허티는 1회에 애런 저지에게 투런, 재즈 치좀 주니어에게 솔로홈런을 백투백으로 맞으며 2회를 넘기지 못하고 강판되며 예정에 없던 백투백 불펜데이가 되고 말았다. 다저스는 2회와 3회 말에도 한 점씩 실점, 스코어는 5대 0이 되었다.
만약 5차전에서 다저스가 졌더라면 6,7차전도 매우 힘든 경기를 이어갔을 것이다. 이틀 연속 불펜데이를 하는 바람에 투수자원은 고갈되었고, 단기 시리즈에서 같은 투수를 여러 번 만나게 되면 승부는 타자에게 유리하기 마련이다. 이날 다저스는 선발 포함 8명의 투수를 투입했고, 9회에는 이틀 전 3차전에 나왔고, 7차전에 나올 선발 뷸러가 나왔다. 더 믿고 내보낼 투수가 없어 궁여지책으로 나왔던 것이다. 차라리 4차전에 정예 구원투수들을 투입해서 승부를 걸었어야 했다며 로버츠 감독에게 비난이 쏟아질 판이다.
하지만 야구의 신은 (만약 승부를 주관하는 신이 있다면) 다저스 편이었다. 5회 초 다저스의 공격, 에드먼의 평범한 플라이를 중견수 저지가 어이없이 놓치며 무사 1,2루가 되더니, 윌 스미스의 땅볼을 유격수 앤서니 볼피가 3루에 악송구 하며 무사 만루. 럭스와 오타니가 연속 삼진으로 불러나 양키스가 위기를 넘기는 듯하던 상황에서 또 어이없는 실수가 나왔다. 베츠가 1루 땅볼을 때리자 당연히 1루 커버에 들어갔어야 할 투수 콜이 구경만 하고 있다가 내야 안타를 만들어 준 것이다. 그리고 나온 월드시리즈 MVP 프리먼에게 2타점 적시타, 테오스카 에르난데스에게 2타점 2루타를 맞으며 순식간에 5대 5 동점이 되고 말았다. 결국 다저스가 7대 6 역전승을 하며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루었다.
세상사가 모두 그렇긴 하지만 큰 일을 이루고 나면 주역들은 주목을 받는다. 시리즈 내 큰 활약을 보인 프리먼, 이날 9회 말 등판해 1점 리드를 지킨 뷸러 등은 기록에 이름을 남길 1등 공신들이다. 하지만 주연보다 더 빛난 조연은 6회 위기에 등판해 불을 끄고 7,8회까지 공을 42개나 던진 트라이넌이다.
로버츠 감독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동안 내가 지켜본 로버츠 감독은 통계에 의존한 교과서적 야구를 한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에서는 다소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고, 이날도 그랬다. 8회 애론 저지가 2루타를 치고 나가고 재즈 치좀이 4 구로 나가 1사 1,2루의 위기를 맞자, 로버츠 감독이 마운드에 나갔다. 그는 투수를 교체할 때만 나간다. 트라이넌은 4차전에 이어 5차전까지 연속 이틀 등판했고 공도 많이 던졌다. 하지만 트라이넌이 계속 던지겠다는 의사를 표하자 두말 않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양키스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리즈일 것이다. 특히 이날 실수를 한 선수들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2024년 월드시리즈는 1차전에서 이미 승부가 났었다고 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다. 베츠를 거르고 후리먼에게 역전 만루홈런을 맞는 순간 분위기는 다저스 쪽으로 넘어왔다. 야구는 그런 경기다. 한 번 흐름의 방향이 바뀌면 바꾸기가 쉽지 않다.
당분간 다저스의 전성기는 계속될 것이다. 부상 중인 투수들이 돌아오고 오타니가 공을 던지는 2025년 더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오타니 영입으로 큰 (성적뿐 아니라 금전적으로도) 재미를 본 구단은 필요한 부분은 기꺼이 돈을 써 보강할 것이다.
오랫동안 시간과 재원을 써 구축해 놓은 마이너 시스템에서 계속 좋은 유망주들이 나오고, 이제껏 그래왔듯이 타 구단이 내놓는 썩 잘 나가지 않는 선수라도 잠재력이 있으면 영입해서 고쳐 쓰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다저스의 큰 장점은 풍부한 선수 자원과 이들을 서포트해 주는 트레이너와 코치진이다.
내년 3월 일본에서 열리는 다저스와 시카고 컵스의 월드투어 도쿄시리즈가 기다려진다. 야구 없는 긴 겨울을 잘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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