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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병원 이야기 (8)

by 동쪽구름 2024. 9. 19.

밤새 기침을 하느라 잠을 설쳤다. 화요일 (9/17) 새벽 5시, 거실에 나가 COVD19 테스트를 꺼내 검사를 시작했다. 15분 후, 결과는 음성으로 나왔다. 지난 금요일 검사 때도 결과는 음성이었다. 코로나가 아닌 것은 다행인데, 그럼 이건 무엇이란 말인가. 
 
3년 팬데믹 기간 동안 감기 한 번 안 걸렸었는데. 평소 일주일에 두 번, 학교(목요일), 성당(일요일), 외출하던 것을 지난주에는 조금 많이 했다. 토요일에 야구장에 다녀왔고, 화요일에는 학교에 카운슬러를 만나러 갔었다. Access 차를 탈 때는 마스크를 하지만, 학교에 도착하면 마스크를 벗는다. 답답하고 숨이 차기 때문이다. 
 
목요일 (9/12) 오후부터 목이 조금 칼칼한 것이 느껴졌다. 아내에게 이야기하니 코로나 전조 증세라고 한다. 다음날 (금요일) 아침, 검사를 해보니 음성이다. 토요일에 세미가 아이들하고 오겠다고 해서 감기 증세가 있다고 하니, 그래도 오겠다고 해서 아이들 얼굴을 보았다. 
 
일요일 성당에는 목사탕을 입에 물고 가서 큰 탈 없이 미사에 참여하고 로라가 준비한 추석 떡까지 얻어먹고 왔는데, 그날 저녁부터 기침이 심해졌다. 
 
다시 화요일로 돌아와, 아무래도 의사를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카이저에 비디오 면담을 신청하고 20분 정도 기다려 의사를 만났다. 증상을 이야기하니 기침 멈추는 약과 숨쉬기 편하게 기도를 넓혀주는 스프레이를 처방해 주었다. 아내가 차를 타고 가 약을 사 왔다. 
 
약을 먹으니 잠이 온다. 기침은 멎었는데, 다른 증상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열이 나니 춥고, 머리가 아프고, 속도 불편하다. 하루 종일 자고 또 잤다. 딱 꼬집어 어디가 아프다고 말하기는 어려운데, 그냥 몸이 아프다. 
 
냉장고에서 차가운 스프라이트를 꺼내 마시다가 문득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늘 일 년에 한두 번씩 감기를 앓곤 했다. 코를 많이 풀어 코가 헐고, 입술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목이 부어 침을 삼키기도 힘든데 할머니가 차가운 콜라를 주면 그게 그렇게 시원하고 맛있었다. 부어오른 목에 탄산을 부으면 따갑고 아프다. 그래도 타들어 가는 목을 적셔주며 넘어가는 달콤한 콜라 맛은 그때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번 감기/독감이 독한 것인지, 아니면 지난 3년 동안 감기와 멀리 살며 그 고통을 잊은 것인지 모르겠다. 분명한 사실은 내 몸이 3년 전과는 달라졌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몸이 늙어간다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서럽고 슬픈 일이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니 그냥 받아들일 뿐이다. 
 
오래전 일하다 만난 나이 든 백인 의사가 해주었던 말이 생각난다. 그 의사도 소아마비를 앓아 목발을 짚고 다녔다. 나보고 나이가 들면 감기를 조심하라고 했다. 소아마비를 앓았던 사람은 호흡기가 약해 감기에 취약하다고 했다. 
 
내일 학교 가기는 글렀다.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예약했던 차를 취소했다. 
 
잠시 안락사를 생각한다. 어찌 되었던 감기는 시간이 지나면 나을 병이다. 끝이 있는 고통은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어느 날 난치병의 고통이 찾아온다면? 안락사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 것 같다. 생의 존엄 같은 큰 의미는 없다. 그냥 고통을 참기 힘들어 끝을 내고 싶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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