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마지막 금요일에 시작된 일이다. 제노의 생일이라 세 집이 모여 저녁을 먹었다. 그냥 헤어지기 섭섭해 근처 맥도널드에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맥도널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휠체어를 내리려 하는데, 휠체어 박스가 열리지 않는다. 스위치를 누르면 나는 “딸깍”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고장이다.
커피를 뒤로 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박스 한쪽 구석에 달린 뚜껑을 열어 안전핀을 뽑고 수동으로 밀어 박스를 열면 휠체어를 꺼낼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집에 와서 알바를 끝내고 돌아오는 준이를 기다려 박스를 열어 달라고 했다. 손전등을 비추며 애를 써도 박스는 열리지 않았다. 결국 차고에 있는 간이 접이식 전동 휠체어를 꺼내 타고 집으로 들어왔다. 마침 노동절 연휴라 화요일까지 기다렸다 수리점에 갔다.
세일즈 우먼 낸시는 이번 기회에 밴을 사라고 회유하고, 정비사 앤디는 박스가 낡아서 그러니 새것으로 바꾸라고 한다. 5년에 5만 마일 정도 탄 중고 밴은 5만 불이 넘으며, 새 박스도 1만 불이 넘는다. 수리견적을 떼어달라고 하니 $1,800이 나왔다. 그나마 부품이 없어 주문을 해야 한다. 급한 대로 응급조치로 일단 작동은 된다.
수요일 아침, 아내의 차 엔진교환을 위해 도요타 딜러에 갔다. 차는 2시간 만에 나왔는데, “check engine” 경고등이 계속 들어온다. 서비스 담당자에게 이야기하니 아마도 냉각수 bypass valve의 문제일 것이라고 한다. 2019년 RAV4와 Corolla에 이런 문제가 많다고 한다. 차를 두고 가면 검사를 해서 알려 주겠다고 한다.
오후에 전화가 왔다. 역시나 냉각수 bypass vale를 교체해야 한다고 한다. 아침에 경고등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아 불편을 주었으니, 부품은 웨어하우스에 사람을 보내 가져다가 할인한 가격으로 수리를 해주기로 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담당자의 말처럼 RAV4에 이 문제가 있어 지난 7월에 소비자가 도요타를 상대로 소송을 했다.
그리고 목요일이 되었다. 늦더위가 찾아와 기온이 110도가 넘는 매우 더운 날이었다. 학교 가는 날이다. 아침에도 차가 늦었는데, 돌아오는 차도 30분이나 늦게 왔다. 지친 몸으로 집에 들어오니 에어컨에서 시원한 바람대신 더운 바람이 나오고, 실내온도가 86도다. 에어컨이 고장 난 것이다.
폴 씨에게 전화를 하니 받지 않는다. 이런 날씨에 이곳저곳에서 수리요청이 들어와 바쁠 것이다. 저녁이 되어 전화가 왔다. 에어컨을 끄고 찬물을 부어 실외기를 식혀 1시간 후에 다시 켜보라고 한다. 마침 아내는 저녁 미사 후에 아줌마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10시가 넘어 돌아왔다.
열대야로 밤이 되어도 열기는 식지 않았다.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돌렸지만 열기에 달아오른 집의 실내 온도는 94도까지 올라갔다. 미국에 와서 40여 년 살며 가장 힘든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아내가 실외기에 물을 뿌리고 1시간 후 에어컨을 켜니 다소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45분가량 후에도 온도는 내려가지 않았다. 폴 씨에게 메시지를 보내니 오후에 오겠다고 한다.
금요일 오후 3시, 폴 씨가 왔다. 어찌나 반갑던지. 구세주를 반기는 성도의 마음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잠시 뚝딱이고 부품을 하나 갈더니 켜보라고 한다. 마침내 시원한 바람이 나온다. 이날 밸리의 기온은 112도를 찍었다. 이 기온은 관상대가 백엽상으로 측정한 기온일 것이다. 잠시 나갔다 들어온 아내의 말인즉, 자동차 온도계는 122도였다고 한다.
수리를 마친 폴 씨가 얼음이 있으면 달라고 한다. 자동차 에어컨이 고장 나, 핸드폰이 더워지면 작동을 하지 않아 아이스 박스에 넣고 다닌다고 한다. 이 무슨 난리인가. 지구 온난화가 심각하긴 한 모양이다.
나의 일주일 고난은 그렇게 금요일에 시작해서 금요일에 끝이 났다.
다음 달 생일을 맞으면 만 나이로 69세가 된다. 옛 어른들이 ‘아홉수’가 나쁘다고 하더니, 벌써 아홉수가 시작된 건가? 한국식 나이로는 지난겨울 설을 지나며 이미 69세가 되었으니 그리보면 이제 곧 ‘아홉수’는 끝이 난다. 아홉수 끝자락에 액땜을 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아침 11시, 바깥 기온은 98도, 실내 온도는 78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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