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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병원 이야기 (6)

by 동쪽구름 2023. 12. 29.

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 (12/23), 가족모임이 있는 날이다. 아이들이 손주들과 와서 함께 점심을 먹고, 선물도 풀고, 놀다가 돌아간 후,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데 작은 핏덩이가 나왔다.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다음날 (12/24), 낮에 그리고 저녁에 두 차례 또 핏덩이가 나왔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일어나 소변을 보니, 피가 녹아 있는 듯 핑크빛이다. 열도 없고 아픈 곳도 없어 큰 병은 아니지 싶어 내일쯤 의사에게 연락을 해야지 하고 또 하루를 보냈다. 
 
12월 26일, 의사와 전화 면담을 하려고 사이트에 들어가니, 마침 주치의에게 빈 시간이 있다. 오후에 통화가 이루어졌다. 일단 피검사와 소변검사를 해 보자고 한다. 집 근처에 있는 카이저에 가서 피를 뽑고 소변 샘플을 주고 왔다. 
 
밤이 되니 검사 결과가 속속 나온다. 백/적혈구의 수치가 높다. 다음날 (12/27) 눈을 떠 전화기를 보니, 전립선암 (PSA) 수치가 높다. 주치의와 전화면담을 하려는데, 빈자리가 없다, 아마 오늘 휴무인 모양이다. 할 수 없이 다른 의사와 약속을 잡았다. 9시 30분쯤 의사에게 전화가 왔다. 그동안의 상황을 설명하니 아무래도 응급실에 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한다. 
 
아내와 응급실로 갔다. 연휴가 끝난 후라 그런지 환자들이 많이 3시간을 기다려 들어갔다. 의사를 보는 방에는 보호자가 앉을 만한 의자도 변변히 없다. 아내는 대기실에서 기다리겠다고 나가고 잠시 후 만난 의사는 일단 피검사와 소변 검사를 해 보자고 한다.
 
응급실 방과 침대를 배정받았다. 링거를 꽂고 피도 뽑았다. 돌아가는 상황이나 응급실의 분위기를 보니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아내에게 집에 가 있으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에서는 응급실에 가 본 적이 없어 어떤지 모르겠다. 미국의 응급실 상황은 모든 일이 너무 늦게 진행된다. 시설에 비해 의료진 특히 간호사들이 부족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미국 사람들은 급한 것이 없다. 매사가 느려 터졌다.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 
 
5시쯤 되니 의사가 와서 CT를 찍겠다고 한다. 내 병력을 보더니 염료에 알레르기가 있다고 하니 약을 투약하고 CT를 찍자고 한다. 6시쯤 방사선과에서 사람이 왔는데, 간호사가 약을 먼저 주어야 하니 30분 후에 연락을 하면 오라고 한다. 6시 45분, 다시 방사선과에서 사람이 왔다. 그제사 간호사는 약을 투약하며 30분 후에 다시 오라고 한다. 
 
오전 9시에 아침을 먹고 링거 한주머니를 맞은 것 말고는 하루종일 먹은 것이 없다. 먹을 것을 달라고 하니 의사에 물어보고 주겠다고 한다. 7시가 되니 반나절 나를 돌보던 여간호사는 퇴근을 하고, 남자 간호사가 배정되었다. 7시 20분이나 되어 방사선과로 갔다. 
 
사진을 찍고 오니, 의사가 주라고 했다며 먹을 것을 준다. 차가운 터키 샌드위치, 잘게 자른 멜론, 사과주스가 전부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를 모시고 응급실에 몇 번이나 갔었다. 그때도 아버지가 시장하시다고 하면 병원에서 차가운 터키 샌드위치를 주곤 했다. 아버지는 겨우 반조각을 드시고는 맛이 없다고 눈살을 찌푸리곤 하셨다. 배가 고파 그랬는지, 나는 절반 넘게 먹었다. 
 
8시 30분쯤 의사가 오더니 피검사와 소변 검사는 어제 결과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CT에서는 아무 이상증후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말로 하지면, 소변에 피가 나오는 이유를 모르는 것이다. 비뇨기과에서 연락이 갈 테니 전문의를 보라고 한다. 응급실 있으며 3번 소변을 보았는데, 더 이상 피는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에 아내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차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끝나면 나오라고 한다. 오라고 전화도 하지 않았는데 차에서 기다린다고? 그럼 집에는 안 갔어? 안 갔다고 한다.
 
30분을 더 기다려 퇴원서류를 받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아내가 차에 있다. 내가 응급실 들어가고 계속 차에 있었다고 한다. 화를 낼 수도 없고. 열녀문이라고 세워줘야 하나? 
 
목요일 (12/28), 비뇨기과에서 전화가 왔다. 1월 10일 전문의를 보러 간다. 
 
to be continued…
 

응급실에서 $50 내고 얻어먹은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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