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에서

아내의 생일

by 동쪽구름 2023. 7. 31.

내 기억 속 환갑은 큰 잔치였다. 왜냐하면 내가 처음 보았던 환갑잔치가 매우 큰 잔치였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경기도 진관리에 살았다. 아들이 없던 외할아버지의 환갑잔치를 큰 딸인 어머니의 집에서 하게 되었다. 이틀 전부터 어머니의 사촌들과 이웃 아주머니들이 모여 전을 부치고, 고기를 삶고, 채소를 볶아 음식을 장만했다.

 

잔칫날 아침에는 한과며 과일, 미리 준비한 음식들을 접시에 쌓아 올려 상을 차리고, 병풍 앞에 상을 받고 앉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일가친척들이 서열 순서대로 잔을 올리고 절을 했다. 절을 하는 옆에서는 기생 출신이라는 중년의 여인네가 구성진 창을 했다. 

 

하루 종일 손님들이 오갔으며, 손님이 올 때마다 음식을 담은 작은 소반이 나왔다. 어떤 이는 밥을 먹었고, 다른 이는 술과 안주만 먹었다. 

 

토끼띠인 아내는 금년에 환갑이다. 아내에게 생일에 어디로 가면 좋겠느냐고 물으니, 전에 간 적이 있는 프렌치 식당 Taix 가 좋겠다고 한다. 손으로 꼽아보니 어른 15명에 아이가 4명이다. 전화로 예약을 하려니 인원이 많다고 매니저에게 이-메일을 보내라고 해서 상세히 내용을 적어 메일을 보냈다. 며칠이 지나도 식당에서는 연락이 없다. 

 

마침 누이동생에게서 전화가 왔기에 Taix에 예약을 하려는데 연락이 없다고 하니, 그 식당은 재계발로 곧 문을 닫을 것이라 그런 모양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두 군데 다른 식당을 추천한다. 전화를 해 보니, 한 곳은 예약은 받지 않고 다른 한 곳은 $1,000 매출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아내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어린아이들도 있고 하니 그냥 편한 식당으로 가자고 한다. 결국 타운에 있는 용궁에 예약을 했다. 

 

70-80년대 LA 지역으로 이민 온 한인들이라며 누구나 중식당 용궁에서 잔치를 했을 것이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라 거의 모든 행사를 용궁에서 했다. 어머니의 환갑, 부모님의 칠순, 작은 아버지 칠순, 부모님의 결혼 50주년과 몇 해 전 동생의 환갑까지 이런저런 가족 행사를 그곳에서 했다. 

 

샌디에이고에 사는 아들, 조카딸, 남동생과 막냇동생 등이 빠져 10여 명이 모였다. 딸아이가 미리 부탁했던 케이크와 몇 가지 장식품을 준비해서 왔다. 이럴 때는 아들보다는 딸이 좋다. 

 

음식은 맛있었고, 오랜만에 모여 화기애애 덕담도 나누고 즐거운 저녁이 되었다. 6개의 촛불에 불을 밝혀 생일 축하노래도 부르고, 사진도 찍고, 촛불은 주인공인 아내와 손녀들이 함께 불어 꺼버리는 것으로 아내의 환갑잔치는 끝이 났다. 

 

아내 나이 40 초반에 만나 60이 되었으니, 함께 한 시간이 대충 20년이다. 돌아보면 잘한 일보다는 실망시키고 섭섭하게 해 주었던 일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잔주름이 늘어가는 아내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짠한 마음이 든다. 부디 아내가 측은지심으로 20년 나의 잘못을 용서해 주기 바란다. 

 

여보, 생일을 축하해! 

 

'일상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병원 이야기 (6)  (2) 2023.12.29
2023년 크리스마스  (4) 2023.12.27
병원 이야기 (5)  (1) 2023.07.08
미완성 연례행사  (3) 2023.05.02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1) 2023.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