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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커피가 식기 전에

by 동쪽구름 2022. 8. 26.

도쿄의 후미진 골목길 지하에 ‘푸니쿨리 푸니쿨라’라는 작은 찻집이 있다. 더운 여름에도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이 찻집에는 앉으면 과거나 미래의 원하는 시간으로 갈 수 있는 의자가 있다.

 

시간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지켜야 하는 세 가지 규칙이 있는데, (1) 과거로 돌아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미래(현재)는 바뀌지 않는다. 사고로 죽을 사람에게 그 일을 미리 알려 주어도 그 사람은 반드시 사고로 죽는다. (2) 의자에 앉으면 그 자리를 떠나서는 안된다. 누군가를 만나려면 그 사람이 카페로 나타나야 한다. (3) 시간 여행을 시작하며 찻잔에 따라놓은 커피는 차갑게 식기 전에 전부 다 마셔야 한다. 만약 식기 전에 다 마시지 못하면 현재로 다시 돌아올 수 없다.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의자에는 늘 한 여인이 앉아있는데, 카페의 점원들은 그녀가 유령이라고 한다. 아마도 그녀는 커피를 다 마시지 못해 현실로 돌아오지 못했거나, 영혼은 과거로 넘어갔지만 몸은 현실에 남은 것일 수도 있다. 그녀 때문에 손님들은 자유롭게 그 의자에 앉을 수 없다. 그녀가 화장실에 가는 틈을 기다렸다 앉아야 한다. 이 유령을 강제로 일어나게 하면 그 사람은 저주에 걸려 숨을 쉴 수 없게 된다. 

 

책에는 네 사람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하나 – 직장여성인 ‘후미코’는 동료인 ‘고로’와 연인관계에 있다. 어느 날 고로가 하고 싶은 일을 따라 미국으로 가게 되며 후미코는 그와 어정쩡한 이별을 하고 만다. 며칠 후 카페로 돌아온 그녀는 시간 여행을 하는 의자에 앉아 고로와 이별하던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고로가 미국으로 갔다는 현실은 바꿀 수 없지만, 그녀는 커피 한 잔이 식을 동안의 시간에 고로의 마음을 읽고 돌아온다. 

 

둘 – ‘코다케’의 남편 ‘후사기’는 3년 전 치매 진단을 받은 후 급격히 기억을 잃어 가고 있다. 이제는 아내인 그녀조차도 알아보지 못한다. 그가 아내에게 주려고 쓴 편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그 편지를 받기 위해 3년 전으로 돌아간다.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사연이라고 생각했던 편지에는 뜻밖의 사연이 적혀 있다. 

 

셋 – ‘히라이’는 카페 근처에서 바를 운영하고 있다. 고향에서 여관을 운영하던 부모는 장녀인 그녀가 대를 물려 여관을 운영하기를 바랐지만, 자립해서 자유롭게 살기를 원했던 그녀는 집을 나온다. 실망한 부모는 그녀와의 연을 끊고 지낸다. 동생인 ‘쿠미’가 언니를 설득하기 위해 찾아 오지만 히라이는 번번이 그녀를 피한다. 그러던 어느 날 히라이를 찾아 카페에 왔다 이번에도 그녀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던 쿠미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히라이는 동생이 마지막 찾아오던 날로 돌아가 그녀를 만난다. 

 

넷 – ‘케이’는 카페의 주인인 ‘나가레’의 아내다. 건강상의 이유로 조금이라도 힘든 일은 할 수 없는 그녀가 임신을 하게 된다. 그녀의 몸은 임신과 출산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연약하다. 살기 위해서는 아기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그녀는 아기를 낳기로 결심한다. 

 

자신이 출산을 이겨내지 못할 것을 아는 그녀는 태어날 아기를 만나기 위해 미래의 시간으로 잠시 떠난다. 

 

‘가와구치 도시카즈’ 소설 ‘커피가 식기 전에’는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일본에서 7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2018년에는 영화로도 제작되기도 했다. 

 

시간여행은 소설이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시간 여행은 평소 우리가 접하던 것과는 다르다.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현실을 바꿀 수 없으며, 제한된 공간에서 뜨거운 한 잔의 커피가 식을 동안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 여행은 한 번밖에 할 수 없다. 

 

나는 이 책을 영어 번역판으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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