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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너무 한낮의 연애

by 동쪽구름 2022. 3. 15.

제목만 보면 달달할 것 같고 다소 에로틱한 연애소설 같지만, 수록된 작품들은 달콤함과는 거리가 멀다. 누구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장면들이 있을 것이다. 생각하면 부끄럽고, 남이 알게 될까 봐 두려운 일들 말이다. 다시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 기억하고 싶지 않아 묻어 두었던 일들, 남들이 알면 어쩌나 싶지만 나의 이익을 위해 서슴없이 자행했던 일들이 연상된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에는 그런 면들이 들어있다.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외톨이다. 나름 법과 질서를 지키고 원칙을 고수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남들과 거리가 생긴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사람들은 주변 환경에 따라 눈치를 보고 처신을 달리한다.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가던 길을 고집하다 손해를 보기도 한다. 

 

2016년 젊은 작가상 대상 수상작인 ‘너무 한낮의 연애’는 영업팀장에서 시설관리팀 직원으로 좌천된 중년의 ‘필용’이 20세대에 잠시 사랑했던 ‘양희’를 만나는 이야기다. 

 

2015년 젊은 작가상 수상작 ‘조중균의 세계’에는 나이 먹고 고지식하여 남들에게 무시당하는 조중균씨가 나온다. 결국 기한 내에 원고 검토를 마감하지 못한 그는 회사에서 쫓겨나고 인턴이었던 나는 정규직으로 발탁된다. 

 

‘세실리아’의 주인공은 대학시절 남학생들에게 희롱을 받으며 지내던 세실리아의 소식을 우연히 듣고 예술가로 성공한 그녀를 만난다. 그리고 그 무렵 그녀가 남자 동기에게 성폭행을 당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기’의 주인공 여성은 마트에서 상한 고기를 산다. 알고 보니 유통기간이 끝난 고기에 새로 스티커를 붙여 팔았던 것이다. 마트에서는 그녀를 무시하듯 시치미를 떼다가 본사 홈페이지에 사연을 올리자 정육부 담당자가 그녀를 찾아와 돈 봉투를 내밀며 일을 해결하려고 한다.

 

‘개을 기다리는 일’의 주인공은 외국 유학 중 어머니에게 맡겨 놓은 개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에 돌아와 개를 찾는다. 하지만 개는 사라진 것이 아니며 어린 딸을 성추행하던 아버지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보통의 시절’에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자란 4남매가 등장한다. 부모님은 운영하던 목욕탕에 난 화재로 돌아가셨다. 가장으로 엄하게 동생들을 키웠던 큰오빠가 동생들을 불러 자신이 위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리고, 목욕탕에 불을 냈던 범인이 최근에 형무소에서 나왔다며 찾아가 따지자고 한다. 범인을 찾아가 그들이 알아낸 것은 자기는 불을 내지 않았다는 그의 고백이다.

 

이 책에 실린 작품에는 세상의 잔혹성과 폭력성이 엿보인다. 작품에는 곳곳에 반전이 숨어 있으며, 추리소설이 아님에도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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