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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능력자

by 동쪽구름 2022. 3. 18.

나는 작가 ‘최민석’을 소설가보다는 이야기꾼으로 먼저 알게 되었다. 그는 내가 즐겨 듣는 EBS  윤고은의 북카페에 오랫동안 고정 패널로 매주 나왔었다. 그의 이야기는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그럴듯하게 가다가 획하고 돌아서 전혀 딴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대개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다. 나는 그가 하는 이야기는 ‘썰’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고 생각한다.

 

그의 소설 ‘능력자’는 2012년에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던 작품이다. 그래서 나름 기대를 하고 집어 들었다. 뒤로 가며 스토리에 집중한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그의 화법과 동일한 필체로 쓰인 책이다. 최민석 특유의 내용에 별 영향도 없는 사설이 엄청 길다. 소설의 초반부에 특히 심하다. 하지만 문단에서는 “신선함은 물론이고 독창성, 매력, 그리고 탄탄한 필력과 서사에 대한 집중력이 괄목할 만한 작품이다”라고 했다니 할 말은 없다. 

 

나 ‘남루한’은 이름 그대로 남루한 신인 작가다. 신인상을 받고, 두 달 만에 소설집을 완성했지만, 출판사는 2년 뒤에나 출간을 하겠다고 한다. 그의 통장에는 잔액이 3320원밖에 남지 않았다. 여기서 최민석은 한국 문단과 출판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넌지시 꺼내 놓는다. 신인 작가는 글을 써서 밥을 먹을 수 없으며, 전업작가가 되는 길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말한다.

 

영화감독이 되고자 했으나 인생이 꼬여 에로영화를 찍다가 지금은 성인 사이트를 개설한 선배의 권유로 야설 작가의 길에 들어선다. 

 

나의 여자 친구 ‘연지’의 아버지는 결혼할 생각이 있으면 최소한의 자금 2000만 원을 마련해 오라고 한다. 딸을 데려갈 남자의 의지와 최소한의 능력을 보겠다는 뜻이다.

 

한편 나의 아버지 ‘남강호’는 전국이 알아주는 주먹이다. 그의 주변에는 약쟁이, 사기꾼, 소매치기, 협잡꾼은 물론 건달과 운동선수들이 넘쳐 난다. 공평 수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한때 세계 챔피언이었던 전직 복서다. 

 

공평수는 나를 보자마자 자신의 자서전을 쓰라고 한다. 나는 그 제안을 거절하지만, 연지와의 결혼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므로 결국 자서전을 쓰기로 한다.

 

그는 재기전을 하기 위해 훈련에 돌입하고, 나는 그의 자서전을 쓰기 위해 그를 따라간다. 

 

찾아보니 오늘의 작가상은 민음사가 1977년에 제정한 상이다. 70년대에는 한수산, 이문열 등이 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상자 리스트를 보니 절반 이상은 이름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작가들이다. 내가 한국 문단 소식에 어두운 점도 있긴 하지만, 상이 곧 베스트셀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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