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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by 동쪽구름 2021. 11. 23.

나는 오랫동안 별과 우주를 동경해 왔다. 처음 안경을 맞추어 쓰던 날 바라보았던 벽제 밤하늘에 가득했던 별들…그 많은 별들 중에 과연 다른 생명체는 없을까. 인간은 처음부터 지구에 살았을까. 외계인이 있다면 그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학생 과학잡지에 실리던 우주 사진과 이야기들은 이런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우주에서는 별과 별의 사이를 빛의 속도인 광년으로 표시한다. 백 광년, 천 광년, 수십억 광년으로도 갈 수 없는 별들이 있다. 지금 내가 고개 들어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들 중에는 이미 수십, 수백 년 전에 사라진 별들도 있을 것이다.

 

우주에 올라 무중력 상태가 되면 나도 남들처럼 자유롭게 떠다닐 수 있다는데. 슈퍼맨 영화에 나왔던 ‘크리스토퍼 리브’는 낙마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후 우주센터에 가서 무중력 상태에서 마비된 몸을 움직여보기도 했었다. 이런 호기심 때문에 미국에 와서 대학에 입학한 후 교양과목으로 천문학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이 내가 천문학을 접한 유일한 시간이었다.

 

EBS ‘윤고은의 북카페’에서 심채경 박사가 자신이 쓴 책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를 소개하는 것을 재미있게 들었었다. 얼마 전 알라딘 중고 책방에서 책을 검색하다 이 책을 발견하고는 주저 없이 사버렸다. 3일 만에 도착한 박스에는 7권의 책이 들어있었지만 단연코 이 책을 집어 들고 이틀 만에 다 읽었다.

 

솔직히 책의 내용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나는 별과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런 이야기는 몇 꼭지에 불과하고 대학교수/여성 과학자로 살며 생각하고 느낀 것을 적은 에세이 집이다. 심 박사는 말하는 것만큼이나 글도 솔직하고 친근감 있게 써 대부분 내용에 공감하게 된다.

 

그녀는 ‘최고의 우주인’(97페이지)이란 글에서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었던 이소연 박사가 여성이란 이유 때문에 언론과 사회로부터 받았던 차별적 대우를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이제껏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이야기였다. 그리고 학자인 자신도 여성이기 때문에 받게 되는 불평등과 편견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바뀌어야 할 부분이다.

 

나는 미국에 40년 넘게 살았지만 한글로 글을 쓸 때나 한국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영어 단어를 피해서 쓴다. 20여 년 전 한국에 처음 나갔을 때, 만나는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영어단어를 섞어 말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었다. ‘지구는 별이 아니다’(117 페이지)를 읽으며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과 오해의 일부는 해소되었다.

 

심 박사의 글에 따르면 대부분의 새로운 지식은 영어권에서 들어오는데 전문서적의 변역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생들은 전문서적을 원서로 보게 되고, 적절한 한국말로 번역된 용어가 없으니 자연히 영어단어를 쓰게 된다는 것이다.

 

‘인터뷰를 하시겠습니까’(133 페이지)에서는 우연한 기회에 ‘네이처’지와 인터뷰를 한 것을 계기로 자신이 유명인사가 되었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 사회와 언론사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보여주는 단면이 아닌가 싶다. 내용은 잘 모르면서 겉모양만 보고 과대 포장하는 보도. 한번 유명세를 타면 끝없이 태워주는 종이비행기.

 

미국 땅에서도 비슷한 보도를 자주 보게 된다. 부모나 조부모 중 한 사람이라도 한국인인 사람이 유명해지면 단박에 한인 “…”라는 기사가 실린다. 그 사람의 성장배경, 한인사회와의 유대관계 따위는 아무 상관이 없다.

 

3부 ‘아주 짧은 천문학 수업’에 가면 몇 꼭지 천문학적인 글이 있어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짧은 천문학 지식을 점검해 보았다. 책 제목처럼 천문학자는 별을 자주 보지 않는다. 이들은 누군가 찍어놓은 사진을 펼쳐 놓고 점을 세고 선을 그으며 도표를 만들어 별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나는 같은 질문을 한다. “우주에 다른 생명체는 없을까. 인간은 처음부터 지구에 살았을까. 외계인이 있다면 그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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