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시작한 칩거도 이제 2년 차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책과 영화를 가까이하게 된다. ‘수잔 서랜든’ 주연의 영화 ‘완벽한 가족’(Blackbird)를 보았다. 루게릭병에 걸려 이미 한쪽 팔은 쓸 수가 없고 다리도 불편한 중년 여성 ‘릴리’가 더 이상 병세가 악화되기 전에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하고 두 딸과 그들의 가족, 절친을 집으로 불러 때 이른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녀가 큰딸의 아들인 손자와 나누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손자가 “할머니, 어른이 되어 중요한 순간에 유용하게 쓸만한 삶의 지혜 같은 것이 있으면 알려주세요.”라고 말하자, 그녀가 답한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뭐 대단한 통찰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척 하지만, 그런 건 없어. 생은 그냥 살아보아야 하는 거야.”
화장을 하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식탁에 앉은 그녀는 가족들에게 하나씩 선물을 건넨다. 손자에게는 자신이 즐겨보던 책을 주고, 작은 딸에게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던 반지를, 남편에게는 결혼반지를 돌려준다. 결혼반지를 돌려주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죽고 나면 다른 사랑을 만나도 괜찮아요라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의사인 남편과 큰딸은 그녀의 결정을 존중하며 협조하기로 하지만, 작은 딸은 반대한다. 아직은 엄마를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엄마는 자기를 잘 모르고, 자신도 엄마의 참모습을 모른다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투정한다. 엄마가 약을 투여하기로 한 시간에 911에 신고를 해서 그녀의 죽음을 막으려 한다.
더 살고 싶어도 불치의 병으로 죽음을 맞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살은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주변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빼앗는 행위이기도 하다. 사장이 죽으면 사원들은 사장을 잃는 것이고, 부모가 죽으면 자식들은 부모를 빼앗기는 것이며, 친구가 죽으면 주변 사람들은 절친을 잃는 것이다.
아무리 내 목숨이라도 함부로 죽을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내 나이도 죽음이 낯설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게다가 장애인인 나는 건강이 나빠지면 훨씬 빨리 남의 손에 의존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과연 어떤 것이 가치 있는 삶이며, 어떤 것이 죽어도 좋은 삶인가.
사전에는 '안락사'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 회복 불능의 질병을 앓고 있는 의식이 있는 환자가 스스로의 결정으로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료적 조치를 취하는 방법이며, '존엄사'는 현대의학으로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환자가 인위적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장치를 보류하거나 중단하여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라고 나와있다.
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수명은 날로 늘어가고 있다. 100세 넘은 노인을 보는 일은 더 이상 힘든 일이 아니다. 이제 노인의 나이는 호적상의 나이보다는 건강을 기준으로 보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생의 길이보다는 질을 이야기할 때다. 하지만 삶의 질에 대한 판단은 각자 개인의 몫이다. 고통 속에 구차한 삶을 사느니 이제 그만 떠나고 싶다는 것을 막는 일이 과연 인도적인 처사인가. 결국 오늘을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의 끝에 릴리는 가족과 작별을 나누고 딸과 남편의 팔에 안겨 생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