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고 날씨가 사나운 날 밤, 일찌감치 방에 들어가 있는데 8시가 넘은 시간에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끔 아마존에서 늦은 시간에 배달이 오는 날이 있긴 하지만 그날을 올 것이 없었다. 주저하다 아내가 나가보더니 누군가 오렌지 박스를 두고 갔다고 한다.
박스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고 쪽지도 없다. 머리를 굴려 보아도 짐작 가는 곳이 없다. 산타의 정체는 잠시 후 아내의 전화기에 뜬 카톡 메시지로 풀렸다. 근처에 사는 교우가 두고 간 것이었다.
12월은 일 년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달이다. 회사 다닐 때, 12월 한 달은 거의 축제 분위기로 보냈다. 휴게실에는 누군가 사 오거나 구워 온 다과가 있었고, 직원들의 책상은 크리스마스 장식과 카드로 화려하게 도배를 했었다.
팀별로 팟럭이나 케이터링으로 준비한 음식으로 돌아가며 점심 파티를 하고, 12월 중순쯤에는 하루 근처의 큰 식당에서 DJ를 불러 오피스 파티를 했다. 여직원들은 준비해 온 드레스로 갈아 입고, 모두들 흥겹게 춤도 추며 놀았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하나씩 포장해서 거실의 트리 밑에 놓아두고, 라디오에서는 캐럴이 흘러나오고 어둑한 거리에 매일 늘어나는 화려한 장식 등을 보며 집으로 가는 퇴근길 등은 12월이 주는 큰 즐거움이었다.
며칠 전에는 마스크를 쓰고 썰매 대신 차를 몰아 산타 흉내를 냈다. 이웃 친구들과 아이들에게 선물 배달을 다녀왔다. 그나마 딸네 집에는 못 갔다. 살고 있는 아파트 빌딩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며 오지 말라는 연락이 왔다. 이제 트리 밑에는 딸네와 샌디에고 사는 아들네 선물만 남았다.
3월에 코로나 발 집콕을 시작하며 여름이 되면 진정이 되겠거니 생각했었다. 여름에는 연말쯤에는 끝이 나지 않겠나 하는 바람을 가졌었다. 나의 바람을 물 건너갔고, 그나마 주변에서 모두들 별 탈 없이 지내고 있으니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이다.
내가 즐겨 듣는 팟캐스트에 나온 어떤 작가는 인생의 합은 “0”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어렵고 힘든 일은 “마이너스”고, 즐겁고 좋은 일은 “플러스”라고 보면, 끝에 가서 합은 “0”에 가깝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힘들 일을 겪을 때는 좋은 일도 그만큼 생길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견디어 낸다고 한다.
그럴듯한 이야기다. 내 생을 돌아보아도 거의 본전 치기가 아니었나 싶다. 이별 뒤에는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고, 실패 뒤에는 성공이, 길게 느껴졌던 힘든 날 뒤에는 좋은 날들이 찾아오곤 했다.
연초까지만 해도 재선이 유력하던 트럼프와의 4년을 잘 참고 견디니, 결국 바이든이 새로운 대통령으로 등장하지 않았나. (물론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2020년, 모든 이들에게 힘들었던 한 해다. 마이너스로 일 년을 보냈으니, 분명 좋은 일이 가득한 플러스 일 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모두에게 성탄 인사를 전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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