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가을 신문을 보다가 평생에 한 번은 가보아야 하는 드라이브 코스에 대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그중에 샌디에고의 79번 국도가 있었다. 봄에는 꽃이 예쁘게 피고 가을이면 단풍이 아름답다는 말에 마침 그쪽으로 출장을 갈 일도 있고 해서 신문을 오려두었다.
10월 말 출장길에 아내와 함께 그 길을 찾아갔다. 한 두해 전에 산불이 크게 났었는지 산에는 까맣게 타버린 나무들 사이로 이제 새로 올라오는 어린 나무들 뿐이었고 단풍 든 나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쿠야마카 (CUYAMACA) 호수까지 올라가서야 겨우 노랗고 빨갛게 물든 나무 몇 그루를 볼 수 있었다.
아쉬움이 남아 11월 초 단풍을 보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이번에는 밸리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의 세인트 앤드류 애비 (St Andrew Abbey) 수도원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조금 그럴듯한 단풍구경을 하고 왔다.
나는 요즘 제대로 된 단풍구경을 하며 지낸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바로 우리 동네에 단풍 든 나무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차를 타고 큰길로 나가면 길게 뻗은 직선거리에 길 양 옆으로 나무들이 빨갛고 노란 단풍잎을 달고 끝 간 데 없이 서 있다.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마치 눈 내리듯이 색색의 낙엽이 날린다. 회사 주차장 옆 잔디밭에도 아침이면 알록달록 낙엽들이 한 무더기씩 떨어져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가을은 내 턱 밑에 와 있었는데 엉뚱하게 먼 곳에서 가을을 찾고 있었다.
우리네 인생사도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답을 앞에 놓아두고 엉뚱한 곳을 찾아 헤매곤 한다. 때로 운이 좋아 너무 늦기 전에 돌아와 답을 찾기도 하지만, 때로는 길을 잃고 헤매는 동안 사람은 가버리고 기회는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어떤 이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고 했지만 난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지나온 삶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이며 남의 떡을 넘보는 어리석음이 아닌가 싶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많은 사람에게 못 가본 길에 대한 아쉬움은 별것 아니다.
단풍이 아름다운 이유는 잠시 머물다 가버리기 때문이 아닌가. 여름내 푸르른 나뭇잎을 아쉬워하는 이들은 드물다. 그러나 찬 바람이 불고 커다란 나무의 잎새들이 위에서부터 붉게 물들어 내려오면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과 쓸쓸함에 감동한다. 바람이 불면 우수수, 찬 비라도 내리면 수북이 쌓여가는 낙엽에게서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세상사는 모두 끝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조화보다 생화가 아름다운 까닭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벌어지기 전 꽃봉오리에는 수줍음이 있고, 활짝 핀 꽃에는 화려함이 있으며, 시들어 떨어져 내리는 꽃잎에는 애잔함이 있다. 먼지만 쌓여가는 조화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벌써 12월이다. 벽에는 달랑 한 장의 달력이 남았다. 내 나이도 이제 가을이다.
낙엽이 떨어진 자리에는 봄이 되면 새싹이 돋아나듯이 내게는 곧 새로운 12장의 달력이 주어질 것이다. 지나간 것에 연연하지 않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살자는 다짐을 해 본다. 사무실 창밖으로는 세월이 흘러가듯 낙엽이 떨어지고 있다.
(이 글은 5-6년 전, 가을을 보내며 썼던 글이다. 가을바람이 차가운 아침에 읽어보니 새삼 시절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칼럼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타의 계절 (0) | 2020.12.20 |
---|---|
가족도 못 보는 명절 (0) | 2020.11.25 |
나의 살던 고향은 (0) | 2020.10.16 |
변해가는 명절 가족모임 (0) | 2020.09.27 |
나도 술을 잘 마시고 싶다 (0) | 2020.0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