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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음

산타의 계절

by 동쪽구름 2020. 12. 20.

회사에서는 크리스마스에 선물 교환을 하며 이를 위해 12월 초에 참여하는 모든 직원의 이름을 바구니에 넣고 이름을 뽑는다. 선물을 준비해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는 날 오후에 회의실에 모여 차례대로 선물을 준다. 누군가 먼저 자기가 뽑은 사람에게 선물을 주면, 그걸 받은 사람은 자기가 준비한 선물을 다음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가장 좋은 선물은 사장님에게서 받는 현금봉투다. 그래서 직원들은 혹시나 사장님이 자기 이름을 뽑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린다.

 

휴게실 문에는 선물 나누기에 참여하는 직원들의 이름이 적힌 커다란 종이가 붙여진다. 여기에 각자 자기가 원하는 선물을 적어 놓을 수 있다. 금년에는 누군가 재미있는 문구를 적어 놓았다. “미첼, 벌써 네 선물은 샀어.” 이미 사놓았으니 무엇을 적어도 소용이 없다는 의미다.

 

며칠 전의 일이다. J가 와서 부탁을 한다. 입사 5년 차인데, 그동안 ‘제임스’의 이름을 세 번째로 뽑았다며 무슨 선물이 갖고 싶은지 알아봐 달라는 것이었다. 그날 오후 ‘제임스’에게 왜 명단에 갖고 싶은 물건을 적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자기는 ‘서브라이즈’가 좋다고 한다. 갖고 싶은 것을 적어 놓고 받는 것은 재미가 없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우리는 한때 식구들이 모두 하나씩 선물을 주고받기도 했었다. 5남매와 배우자, 부모님, 그리고 아이들까지… 돌아가며 선물을 풀어보고 사진을 찍으며 반나절을 보냈다. 쓰레기만 두 봉투가 나왔다. 그리고 다음날은 모두 이리저리 물건을 교환하고 반품하러 쇼핑몰로 달려갔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각자 이름을 뽑아 쓸만한 물건을 하나만 선물하기로 했다. 이름과 함께 자기가 원하는 선물을 몇 가지 적기로 했다. 그랬더니 모두들 선물카드를 써넣었다. 각자 기호가 달라 비싼 물건일수록 자기가 보고 사겠다는 속셈이었다. 이제 가족 모임에서 어른들 선물은 퇴출이 되었다.

 

몇 년 전 아이들이 내 생일에 애플 시계를 선물했다. 내가 아이폰을 쓰니 편리하게 쓰라고 사준 것이다. 고맙다고 해놓고는 박스도 열지 않았다. 다음날 애플 스토어에 가서 아이패드와 바꾸었다. 마침 아이패드가 구형이라 작동이 잘 안 되던 터라 나는 좋은데, 아이들은 섭섭해하는 눈치였다.

 

북가주에 사는 셋째는 포장이 근사한 선물용 과일이나 티를 보내주곤 한다. 우편주문이라 당연히 비싸다. 실속이 없는 선물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얼마 전부터 선물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꾸었다. 누군가 내게 선물을 하면 그냥 먹고 써버리기로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을 선물한다. 내 손으로는 사지 않을 물건들이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그런 물건을 먹어보고 가져보겠는가.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선물하기도 쉬워졌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물하면 된다. 받는 사람은 내 덕에 그런 선물도 써보게 되는 것이다.

 

주말 오후 간단히 점심을 먹기 위해 동네 ‘맥도널드’에 갔다. 주문을 하고 돈을 내는 창구 앞에 차를 세워 얼마냐고 묻자 앞 차가 이미 계산을 끝냈다는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아는 사람의 차는 아닌데. 틴팅에 되어 있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운전자만 타고 있었다.

 

더러 뒷사람의 커피나 음식값을 선물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지만 막상 내가 그 수혜대상이 되고 보니 얼떨떨하다. 역시 12월은 산타의 계절인 모양이다. 

 

(몇 년 전 크리스마스에 신문 칼럼으로 썼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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