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사순절을 시작하며 코로나 탓에 성당에 나가지는 못하지만 나름 의미 있는 40일을 보내자는 생각을 했다. 남들은 사순시기에 평소에 아끼고 좋아하는 일들 중 한 가지를 포기하거나 중단하며 절제의 시간을 갖는다고 하는데, 나는 이제껏 그래 본 적은 없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고 끊기 힘든 인터넷 바둑을 중단하기로 했다. 10여 년째 거의 매일 인터넷으로 바둑을 두어왔다. 가족들에게 사순 기간 바둑을 끊기로 했다고 선언하니, 다들 “그래?” 하는 눈치다. 며칠이나 가겠나 하는 표정들이다.
실제로 며칠 후 약간의 금단현상이 오기도 했고, 가족들이 모두 집을 비운 시간에는 아이패드를 앞에 놓고 흔들린 적도 있다. 부활절이 다가오자 조카딸 ‘민서’가 “부활절이 지나고 나면 다시 바둑 두실 거예요?” 한다. 그제사 내가 바둑을 잊고 지냈다는 것이 생각났다. 언제부턴가 아예 바둑을 잊고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바둑 사랑은 그 역사가 꽤 길다. 14-15살 무렵에 바둑을 배웠다. 처음 바둑을 배우고 얼마간은 세상이 온통 바둑판으로 보였다. 그 무렵 한국의 집들은 벽이나 천장에 벽지를 발라 놓았다. 벽지에 그어진 줄은 바둑판, 그 사이에 놓인 패턴은 바둑돌로 보였다. 서울의 교회 번역부에서 일할 때는 바둑을 좋아하던 K부장과 점심시간이면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바둑을 두다가 휴게시간을 훌쩍 넘기곤 했다.
4월 초, 마침내 부활절이 되었고, 다시 바둑을 둘 수 있게 되었다.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동안 바둑판을 마주한 것은 딱 3번이다. 그렇다고 내게 다른 새로운 취미가 생긴 것은 아니다. 40일 동안 익힌 습관 탓이다.
10여 년 동안 내가 인터넷 바둑을 둔 기록을 찾아보니, 4,486승 63무 4,537패라고 나온다. 그동안 9,086판의 바둑을 둔 셈이다. 한 판에 30분이 걸린다고 치면, 272,580분이다. 시간으로 환산하면 4,543시간, 189일이다. 밥먹듯이 일상적으로 마주하던 바둑인데, 40일을 잊고 지내니 더 이상 간절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사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아 그만두고 싶은 습관이 있을 것이며, 익히고 싶지만 쉽게 중단하게 되는 일도 있게 마련이다. 내 경험에 미루어 볼 때, 40일을 잘 참아내면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결심이 서면 가족이나 친구 등 가능하면 많은 사람에게 본인의 결심을 알리는 것이 좋다. 그래야 주변의 격려와 감시의 눈길을 동시에 받을 수 있다. 금단현상을 이기는데 도움이 되는 대안을 갖는 것도 좋다. 금연을 하는 사람이라면 담배 없이 파이프만 입에 문다거나, 금주가 목적이라면 차나 건강음료를 술잔에 부어 마신다. 내 경우에는 추리소설을 많이 읽었다.
어떤 일이고 매일 꾸준히 하면 그 결과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 집 마당의 절반 가량은 깔끔하게 벽돌이 깔려 있다. 아내가 조금씩 잡초를 뽑고, 땅을 고르고, 한 번에 10여 장씩 벽돌을 사서 나르며 몇 달에 걸쳐 만든 것이다.
코로나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서로에게 자랑할만한 좋은 습관 하나쯤 몸에 익히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