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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음

텃밭에서...

by 동쪽구름 2021. 6. 26.

어떤 이들은 집에서 키우는 개나 고양이 때문에 마음껏 여행도 하지 못하고 외출을 했다가도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텃밭 때문에 쉽게 집을 비우지 못한다.

 

텃밭의 주인은 아내다. 봄에는 2-3일에 한번 물을 주더니, 요즘은 거의 매일 저녁 물을 준다. 내가 늦잠을 자는 날은 아침에도 슬그머니 나가 물을 주고 온다. 

 

남가주의 여름 태양은 그 열기가 대단하다. 아침에 물을 주어도 한낮이 되면 텃밭의 작물들은 모두 축 늘어져 보기가 안타까울 지경이다. 결국 아내가 그늘막을 만들고 파라솔을 펼쳐 놓아 한나절 햇빛을 가리게 되었다. 

 

텃밭 가꾸기는 마이너스 사업이다. 봄에 흙과 거름, 씨앗과 모종을 사며 들어가는 시설투자는 그렇다 쳐도 여름내 들어가는 물값과 노동을 생각하면 마켓에서 사 먹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하지만 씨앗이 땅을 헤치고 올라와 잎을 내고 자라는 것을 보는 재미는 돈을 주고는 살 수 없는 즐거움이다. 

 

“논에 물대는 소리와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텃밭 가꾸는 일은 자식 키우는 일과 비슷하다. 첫 아이를 낳은 나이 어린 부모들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내지만 아기의 자라는 모습에서 보람과 즐거움을 발견한다. 아마추어 농부들도 비슷하다.

 

몇 년 전 뒷마당에 감나무를 심었다. 처음 1-2년, 제법 감이 달리는가 싶더니 차츰 시들해져, 작년 가을에는 딱 3개가 익었다. 그나마 2개는 다람쥐에게 빼앗기고 1개를 4 식구가 나누어 먹었다.

 

지난겨울, 우리 것보다는 좀 큰 감나무가 있는 이웃집에서 가지치기한 것을 보았다. 아, 감나무도 가지치기를 하는 모양이구나. 유튜브를 찾아보니, 감나무는 새로 나온 가지에만 감이 달린다는 것이 아닌가. 아내가 사다리에 올라 마구 잘라냈다. 

 

봄이 되니 묵은 가지를 잘라낸 곳에서 새순이 돋기 시작했다. 둥치도 굵어지고 이리저리 가지가 생기더니 감도 많이 달렸다. 새것이 나오려면 낡은 것을 잘라주어야 하는데, 무지한 주인 탓에 얼마나 답답했을까. 

 

나무도 크는 때가 있고 잠시 쉬어가는 때가 있는 모양이다. 작년 이맘때는 탐스러운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던 복숭아나무에는 훨씬 적은 수의 열매가 아직도 익지 않은 채 달려 있다. 아마도 한 해 쉬어 가려는 모양이다. 

 

텃밭도 비슷한 분위기다. 작년에는 호박이 많이 열려 아내가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고도 남아 엄청 많이 말리기도 했는데, 올해는 아직 호박 맛을 보지 못했다. 대신 오이가 주렁주렁 달리고 있다. 

 

여러 자식이 항상 모두 다 잘 지내면 좋으련만 세상사는 그렇지 않다. 누군가 잘 지내면, 누군가는 조금 어렵기도 하다. 부모의 마음이란 늘 힘든 놈 곁에 가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힘든 일도 결국은 그놈의 몫이다. 힘든 세월을 보내고 나면 더 단단해지고 강해지기 마련이다. 가만히 지켜보며 참고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서둘러 저녁을 먹고는 아내를 따라 뒷마당으로 나간다. 물을 주며 이리저리 살피다가 오이를 따서 뚝 잘라 주기도 하고, 방울토마토를 건네 주기도 한다. 이렇게 얻어먹는 맛은 결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맛이다. 이 재미에 주머니 털어 비싼 물값도 군말 없이 지불한다.

 

(부쩍 커진 감나무다.)

 

(넝쿨 따라 올라사는 오이. 곁에 있는 보라색 꽃은 도라지다.)

 

(멀리 보이는 것은 토마토, 호박, 가지, 고추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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