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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재앙을 소재로 한 책

by 동쪽구름 2021. 1. 7.

‘루만 알람’의 세 번째 소설 ‘Leave the World Behind’(세상을 뒤로하고)를 읽었다.

 

‘아만다’와 ‘클레이’는 10대의 자녀들과 함께 바쁜 뉴욕시의 삶을 뒤로하고 롱 아일랜드의 외진 마을로 휴가를 떠난다. 풀장까지 딸린 커다란 저택을 빌려 잠시 부유한 삶을 맛보려는 그들에게 늦은 밤 동부 연안의 대규모 정전사태를 피해 온 흑인 부부 ‘G.H.’와 ‘루스’가 불쑥 찾아온다.

 

부부는 이 저택이 자신들의 집이라고 주장하며 하룻밤을 자고 가겠다고 한다. 아만다는 그들을 의심하지만 결국 아래채 방을 그들에게 내어 준다.

 

대도시는 정전사태를 맞았지만, 이들에게는 전기와 물이 계속 공급된다. 하지만 휴대전화는 먹통이 되고, TV 도 나오지 않아 그들은 바깥 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건 책을 읽는 독자도 마찬가지다. 정전사태를 가져온 재앙이 자연발생인지, 인재인지, 사고인지, 전쟁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딸아이가 목격하는 사슴 떼의 이동과, 갑자기 고열과 함께 이빨을 잃게 되는 아들아이, 유리창에 금을 낼 정도로 강력한 굉음 등이 재앙의 원인을 상상하게 해 줄 뿐이다.

 

백인이지만 중상층이 되기 위하여 애쓰는 아만다 부부와 흑인이지만 높은 교육을 받았고 돈도 많은 G.H. 부부간의 인종적 편견을 엿볼 수 있다. 아만다는 이런 크고 멋진 저택은 흑인 부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클레이는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마을에 다녀올 것을 자청하지만, GPS가 작동하지 않자 그는 길을 잃는다. 스마트 폰에 저장된 번호를 누르며 더 이상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 준다. 그는 길에서 멕시코 말을 하는 여인을 만나지만 그녀가 하는 말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한다. 그녀를 도와 사태를 알아낼 생각도 않고, 그녀로부터 도망친다.

 

그는 마을에는 가지 못하고 겨우 집을 찾아 돌아온다. 가장은 가족의 리더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그는 길을 잃고 당황했던 일을 집에 남았던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한다.

 

루스는 도시에 남아 생사를 알 수 없는 딸과 손자를 걱정하지만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자신들과는 아무 상관없는 낯선 이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한다는 사실에 잠시 분노하기까지 한다.

 

10대의 아이들은 호기심에 끌려 위험을 무릅쓰기도 하지만, 아직은 어른들에게 의존한다. 외부의 공포는 두 부부가 서로에게 의지하게 하며, 피부색과 관계없이 나이 든 부부는 젊은 부부에게 부모와 같은 너그러움과 여유를 보여 준다.

 

책은 뚜렷한 결말 없이 끝난다. 그들이 어떻게 남은 날들을 살아갈 것인가는 독자의 상상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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