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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광수를 다시 만나다

by 동쪽구름 2020. 12. 27.

내가 아는 만화가 박광수는 단행본으로 130만 권이 팔렸다는 만화책 ‘광수생각’의 저자였다. 알리딘 중고서점에서 ‘살면서 쉬웠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를 보았을 때, 그냥 가볍게 웃으며 볼 수 있는 만화책이겠거니 하고 주문했다.

 

받아 보니 만화보다는 짧은 단상과 에세이가 많은 책이었다. 함께 주문했던 다른 책들을 읽느라 미루어 두었다가 며칠 전 읽었다. 이제껏 읽었던 어떤 책보다도 줄을 많이 긋고, 책갈피에 표시를 하며 읽게 되었다.

 

그는 살아오며 경험한 것들을 때로는 감성적으로, 때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때로는 웃음을 머금어 이 책에 담아내고 있다. 사는 시대와 걸음의 폭은 달라도 사람들이 살아가며 느끼는 것은 대개 비슷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그만큼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때론 들춰내거나 다시 돌아볼 필요도 없이 그냥 두는 것이 더 바람직할 때가 많다.” (43 페이지) 살아보니 정말 그렇다. 때로는 못 들은 척, 못 본 척, 그냥 지나가는 것이 나을 뻔했다.

 

치매 판정을 받은 어머니를 두고 후배가 엄마를 위해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하자, 그가 말한다. “너의 엄마를 위해서가 아니고 너를 위해서야.” (47 페이지) 나는 그런 기억을 많이 만들지 못하고 부모님을 잃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이 슬프고 아쉽다.

 

어느 날 함께 술을 먹다가 취한 친구가 마흔이 넘은 그에게 말한다. “이야, 광수야아, 너 이다음에 크면 뭐가 되고 싶니?” 그는 꿈과 계획은 여전히 출발점에 머물러 있는데, 자신이 혼자 멀리 떠나와 있음을 깨닫는다. (101-103 페이지) 누군가 뒤에서 머리를 ‘멍’ 때리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버려두고 온 꿈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을까?

 

그는 “언제나 우리는 도중이다.” (121 페이지)라고 말한다. 그렇다. 사는 일에 끝은 없다. 끝은 생의 끝에만 있을 뿐이다.

 

“내 삶은 천당에 가기에는 조금 민망하고, 지옥에 가기에는 조금 억울하다.” (151 페이지) 나도 그렇다.

 

“당신이 옳다면 화낼 필요가 없고, 당신이 틀렸다면 화낼 자격이 없다.” (203 페이지) 간디가 한 말이라고 한다. 화나는 일이 생길 때 꺼내보면 좋을 말이다. 화를 낸다고 벌어진 일이 해결된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는 법으로 정했으면 좋을 일들을 적어 놓았는데, 그중 정말 공감하는 것이 있었다. “콘서트 7080 프로그램에 나와서 옛 가수들이 신곡을 발표하지 못하게 하는 법” (223 페이지) 나는 오른손, 왼손, 두 손 모두 들어 이 법을 지지한다. 지난여름에는 코로나 때문에 표를 사두고도 가지 못했지만, 그 이전에는 가끔 나이 든 가수들의 콘서트장을 찾았었다. 나는 그들의 옛 노래를 들으며 추억을 찾기 위해 갔는데, 정작 그들은 별로 신통치 않는 신곡을 불러대곤 했다. 한때 우리의 감성을 흔들었던 그런 노래를 계속 불러다오.

 

마지막 장을 넘기기가 아쉬울 정도로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중년의 감성을 지닌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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