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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여자들은 다 똑같아요

by 동쪽구름 2021. 1. 4.

별 볼 일 없는 화가 영수(김주혁)에게는 술을 좋아하는 애인 민정(이유영)이 있다. 그는 그녀와 결혼까지 하려고 생각하지만, 동네 친구들은 그녀를 좋게 말하지 않는다. 어느 날 그녀가 술을 마시고 다른 남자와 소란을 피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사실을 말하라고 그녀를 다그치다 둘은 다투게 된다.

 

다툼 후 민정이 연락을 끊자 영수는 그녀를 찾아 헤매고, 민정은 연남동 근처에서 다른 남자들을 만난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그녀에게 낯선 남자가 다가와 그녀를 안다고 하지만, 그녀는 모르는 사이라고 하다가, 실은 쌍둥이 언니가 있다고 한다.

 

그녀가 처음 만난 남자는 유부남이었고, 두 번째 남자는 영화감독이다. 둘 다 민정을 어떻게 해 보려고 수작들을 부리고, 민정은 줄듯 말듯한 언행으로 그들을 유혹한다. 술을 얻어먹으며 그들을 데리고 노는 느낌이다. 그녀가 내뱉는 대사는 남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들이다. 

 

술이 취한 상태로 영수를 다시 만난 민정은 영수를 처음 만난 듯 행동한다. 그의 방에 와서 섹스를 나눈 후에도 마찬가지다. 영수는 “당신이 너무 좋아서 당신 믿을 겁니다”라며 그녀에게 장단을 맞춰준다. 이게 영화의 전부다.

 

술주정뱅이 민정이 다중인격자인지, 그냥 계속 거짓말을 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쌍둥이 언니가 있는 건지 관객은 알 수 없다. 아마 각본을 쓰고 감독을 한 홍상수 자신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영수가 형이라고 부르는 동네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 형의 연인이 이런 말을 한다. 남자들은 여자가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여자를 찾아 나서지만 실은 여자는 다 똑같다고 한다. 정말 여자들은 다 똑같은가?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은 전형적인 홍상수식 영화다.

 

그의 영화는 스펙터클 하지 않다. 서스펜스나 클라이맥스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의 영화는 여자들보다는 남자들에게, 특히 중년 남자들의 감성에 어울리는 것 같다. 홍상수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영화에 옮겨놓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의 영화는 스냅사진 같기도 하고, 뚜렷한 결말이 없는 단편소설 같기도 하다. 그게 홍상수 영화의 매력이며, 나는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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