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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신분 상승

by 동쪽구름 2021. 1. 28.

인도영화 ‘화이트 타이거’를 넷플릭스로 보았다.

 

주인공 ‘발람’은 학교에서 똑똑함을 인정받아 장학금을 받고 인도의 수도 델리에 있는 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잡지만,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는 집안일을 도와야 한다는 가족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그는 집에서 운영하는 찻집에서 형과 함께 일하며 커 간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애쓰던 아버지는 결핵에 걸려 치료도 제대로 받아 보지 못하고 죽는다. 마을은 대도시에 사는 지주의 소유며 주민들은 허리가 굽도록 일을 해도 그에게 세를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며, 가난이 대를 잇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지주의 아들이 미국에서 돌아와 운전기사가 한 명 더 필요하다는 소식을 들은 발람은 할머니를 졸라 운전 교육비를 받아내고, 그 집을 찾아가 운전기사가 된다.

 

어느 날 총리가 찾아와 지주의 탈세를 눈감아 주는 대가로 250만 루피를 요구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주의 아들 ‘아쇽’과 그의 아내 ‘핑키’는 발람의 차를 타고 델리로 간다. 핑키의 생일날 술에 취한 상태로 운전을 하던 그녀가 아이를 치어 죽이게 된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발람은 그들을 태워 현장을 떠나고, 차에 뭍은 피의 흔적을 닦아 증거를 없앤다.

 

다음날 소식을 듣고 나타난 지주와 그의 큰 아들은 운전을 하다 아이를 죽인 것이 발람이라는 자백서에 사인을 하게 한다. 상전의 죄를 뒤집어쓰는 일,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목격자가 나타나지 않아, 사고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주 일가의 부패와 부당함, 남편 아쇽의 무능에 지치고 실망한 핑키는 미국으로 돌아간다. 아내를 잃고 절망에 빠진 아쇽을 극진히 돌보아 회복시킨 발람은 조금씩 세상 물정에 눈을 뜬다. 고치지 않은 차 수리비를 받아 내고, 기름을 빼내어 팔고, 차를 가지고 나와 영업을 하며 돈을 챙긴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해서 벌 수 있는 돈은 지주 일가가 부패한 관리에게 바치는 뇌물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도 미치지 못한다.

 

충실한 종복으로 사는 것을 천직으로 알던 그가 마침내 큰 결심을 하게 된다. 선거 후, 고액의 뇌물을 요구하는 총리에게 돈을 전달하러 가는 날, 아쇽을 살해하고 그 돈을 훔쳐 도망간다. 그리고 그 돈으로 택시회사를 차려 사업가로 크게 성공한다. 그리하여 그는 꿈에 그리던 신분상승을 이룬다.

 

영화는 인도를 무대로 삼고 있지만, 어느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가진 자의 착취, 부패한 공무원, 사회 안전망의 부실 등을 꼬집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한국의 ‘기생충’과 비교한다. 가진 자와 없는 자들의 갈등, 같은 신분을 가진 자들이 신분 상승을 위해 서로의 약점을 이용하는 점 등이 거의 동일하다. 기생충에서는 가난의 상징으로 지하방이 나온다. 화이트 타이거에서 부자들은 고층 콘도의 스위트룸에서 묵고, 그들의 운전기사들은 벌레가 들끓는 지하차고의 허름한 방에서 산다.

 

발람이 두 번째 운전기사로 취직이 되어 들어가자, 먼저 있던 첫 번째 기사는 그를 부하처럼 부린다. 그가 무슬림이라는 비밀을 알아낸 발람은 그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다. 없는 사람들의 눈에는 같은 신분으로 보이는 정치인과 지주들 사이에도 갑을의 관계는 존재한다. 부패한 정치인은 권력을 앞세워 지주들의 돈을 빼앗는다.

 

대부분의 인도 영화에 등장하는 떼창이 화이트 타이거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는 빠른 템포로 진행되며, 가난을 비루하거나 비참하게 조명하지도 않는다. 어둡지 않게 어두운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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