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16 아홉수 8월의 마지막 금요일에 시작된 일이다. 제노의 생일이라 세 집이 모여 저녁을 먹었다. 그냥 헤어지기 섭섭해 근처 맥도널드에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맥도널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휠체어를 내리려 하는데, 휠체어 박스가 열리지 않는다. 스위치를 누르면 나는 “딸깍”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고장이다. 커피를 뒤로 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박스 한쪽 구석에 달린 뚜껑을 열어 안전핀을 뽑고 수동으로 밀어 박스를 열면 휠체어를 꺼낼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집에 와서 알바를 끝내고 돌아오는 준이를 기다려 박스를 열어 달라고 했다. 손전등을 비추며 애를 써도 박스는 열리지 않았다. 결국 차고에 있는 간이 접이식 전동 휠체어를 꺼내 타고 집으로 들어왔다. 마침 노동절 연휴라 화요일까.. 2024. 9. 8. 너라도 끝가지 걸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책은 소설과 에세이다. 소설은 픽션이고, 에세이는 논픽션이지만, 둘의 공통점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사람 사는 이야기만큼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은 없다. 성당에 나간 지 10여 년이나 되었지만 종교서적이나 교리책은 몇 권 읽지 않았다. 아직 신앙이 부족하고 신학적인 지식이 적은 탓이리라. 나의 잘못된 생각인지 모르지만, 종교서적이라는 것은 저자가 생각하는 신의 모습이라는 생각이다. 어느 종교나 교리라는 것이 있지만, 신의 모습이나 그의 뜻을 설명해 보라고 하면 결국 자신이 믿고 이해하는 수준을 넘지 못한다. 정답보다는 그랬을 것이라는, 그럴 것이라는 다소 애매모호한 설명을 듣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런 애매한 답보다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 2024. 8. 13. 그림 읽어주는 여자 인터넷 책방의 단점은 책을 만져보거나 펼쳐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책의 제목이나 작가에 끌려 책을 선택하게 된다. 물론 구입 전에 구글에서 책을 소개하는 글을 찾아보기는 하지만 이 역시 내가 직접 책을 펼쳐보는 것과는 다르다. 그림 DJ ‘한젬마’의 책 ‘그림 읽어주는 여자’도 제목에 끌려 구입한 책이다. 제목을 보고 그림에 대한, 그림에 얽힌, 또는 화가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책에 실린 그림들은 자세히 보기에는 터무니없이 작았고, 글은 짧아 에세이라기보다는 단상에 가까웠으며, 페이지에는 여백이 너무 많았다. 1, 2 장을 읽으며 부족한 내용으로 서둘러 만든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을 정도다. 나의 오해는 3장, “그림 세계와의 경쾌한 연애”을 읽으며 풀렸다. 이 장에.. 2024. 2. 13. 아내의 생일 내 기억 속 환갑은 큰 잔치였다. 왜냐하면 내가 처음 보았던 환갑잔치가 매우 큰 잔치였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경기도 진관리에 살았다. 아들이 없던 외할아버지의 환갑잔치를 큰 딸인 어머니의 집에서 하게 되었다. 이틀 전부터 어머니의 사촌들과 이웃 아주머니들이 모여 전을 부치고, 고기를 삶고, 채소를 볶아 음식을 장만했다. 잔칫날 아침에는 한과며 과일, 미리 준비한 음식들을 접시에 쌓아 올려 상을 차리고, 병풍 앞에 상을 받고 앉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일가친척들이 서열 순서대로 잔을 올리고 절을 했다. 절을 하는 옆에서는 기생 출신이라는 중년의 여인네가 구성진 창을 했다. 하루 종일 손님들이 오갔으며, 손님이 올 때마다 음식을 담은 작은 소반이 나왔다. 어떤 이는 밥을 먹었고, 다른 이는 술과 안주만 .. 2023. 7. 31.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