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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말하다

by 동쪽구름 2022. 5. 29.

작가 ‘김영하’의 삼부작 산문집 중 두 번째 책인 ‘말하다’를 읽었다. 소설가가 쓴 가벼운 에세이 집이거니 하고 집어 들었는데, 생각과 달리 꽤 무겁다. 그동안 그가 해온 인터뷰와 대담, 강연 등을 엮은 책이다. 그가 바라보는 우리 사회, 문단, 그리고 인생관이 고루 들어 있다.

 

“아이들은 예술을 합니다… 학생들이 떠올리는 행복한 순간은 예술적 경험과 관련돼 있습니다… 이때의 예술은 행복합니다. 아직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의 예술… 은 끝이 납니다. 일단 학원에 가야죠… 학년이 올라갈수록 예술은 대학을 갈 아이들에게만 허용이 됩니다.” (70-72 페이지)

 

다음은 작가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세탁소 주인도 힘들고 택배 기사도 힘들죠. 하지만 그들은 자기 고통을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비해 아름답다고 말해볼 기회를 갖지 못하고 죽잖아요. 그에 비해 작가들은 자기의 고통을 남에게 말할 수 있어요.” (88 페이지)

 

100% 공감한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쓰는 글에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고통이 들어있고, 그럼에도 그 안에서 생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싶어 한다. 

 

“저는 인간들이 어리둥절한 채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면서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다 결국 죽어 사라지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102 페이지)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그렇게 말하기에 나는 이미 여러 차례 이런 일들을 저질렀다. 그래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제 동료 작가들에게는 모두 훌륭한 할머니가 있는 것 같습니다.” (122 페이지) 

 

내게도 그런 할머니가 있었다. 아버지가 실향민인 탓에 친할머니는 만나 본 적도 없고, 외할머니가 내가 아는 유일한 할머니다. 할머니는 학교 문턱도 넘은 적이 없는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도 사용하는 고사성어들은 모두 할머니에게서 들은 것들이다.

 

지금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모두 할머니 덕이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내리는 날도 책방에 전화를 해서 새 책이 나온 것을 확인하면, 할머니는 한달음에 책 제목을 적은 쪽지를 들고 책방으로 달려갔다.

 

그의 홈페이지에 한 고등학생이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하자, 그는 “왜 글을 잘 쓰려고 하세요? 잘 쓴다는 것은 뭐죠?”라고 답을 한다. 그는 이건 마치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나요?”와 같은 맥락의 물음이라고 말한다. 

 

결국 그는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자기 즐거움을 위해서 써라.” 고 답을 했다고 한다. 

 

그는 글쓰기가 즐겁다면 그것은 글쓰기가 우리를 해방시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감옥에 있을 때도 글을 쓰고, 고통스러울 때도 글을 쓴다. 인간은 정말 갑갑하고 괴로울 때 글을 쓴다. 

 

내가 왜 쓰잘데 없이 글을 쓰는가를 생각해 보니, 그의 말이 맞다. 갑갑하고 괴로워 글을 썼고, 이제는 글을 쓰는 일이 즐거워 매일 글을 쓴다. ‘김영하’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가 더욱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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